그만두다
/박설희
나무들도 가슴을 칠까, 숨쉬기가 팍팍하다고 땅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에 부르르 떨까, 수십 년 살 섞은 흙과 함께 동여져 밤길 실려 갈 때 속도가 일으킨 바람과 사납게 자신을 흔들고 간 바람을 구별할까, 흙 그러모아 몸을 세우려 애쓰다가 아스팔트에 막혀 뿌리를 더듬거리며 사방이 벽이라고 탄식할까,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어 칵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가지를 푹 늘어뜨릴까, 잎을 틔어내는 것도 꽃 피우는 것도 그만두고 열매 맺는 것은 더욱 그만두고 눈 감고 입 틀어막아 이번 생은 글렀다고 다음번엔, 이라고 다짐하며 스스로 봉인할까, 품고 살던 생명들 다 그만두고 -시집 ‘꽃은 바퀴다’
이 시를 대하니 나무의 숙명과 인간의 숙명이 어쩌면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 화자는 자신의 심상을 나무에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혼돈의 시대에 가슴 칠 일 얼마나 많은가. 동고동락하던 기존질서를 떠나 이역에 안착해야 하는 일도, 사방이 꽉 막힌 벽이어서 절망에 몸부림치는 일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결국에는 자신에게 의탁하는 모든 친연을 버리고 다 그만두고 싶다는 이 최후의 선언을 죽어가는 나무에게서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시인의 날카로운 자의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그 거대한 몸뚱이임에도 어쩔 수 없이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던 소나무 한그루가 떠오른다. 그도 역시 속도가 일으킨 바람과 자신을 떠 옮기는 사나운 바람을 구별했을까? 시인의 눈에 포착된 나무들의 일상이 곰곰 생각을 키우는 날이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