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1천127일만인 17일, 미수습자 9명 중 한 명인 단원고 고창석 체육 교사의 유해가 확인됐다.
지난 5일 오전 11시 36분쯤 침몰 해역에서 수습한 뼛조각 1점이 이날 고 교사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해당 유골이 발견됐던 곳은 유실 방지를 위해 쳐놓은 펜스 구역이다.
3년 만에 남편을 되찾은 고 교사의 유족은 “한 조각의 뼈로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아직 남편도 모두 수습하지 못했고,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이 있다”고 말을 아꼈다.
2014년 3월 단원고 체육 교사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변을 당한 고 교사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때면 항상 몸이 먼저 앞섰다고 한다.
또 비행을 저지른 학생에 대해 꾸중을 하거나 매를 들지 않았고, 되레 이런 제자들을 집이나 식당으로 불러 저녁 먹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 바른 길로 인도하는 친형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고 교사는 세월호 참사의 순간에도 자신보다 제자들이 먼저였다.
학생들을 인솔하던 고창석, 양승진(미수습자) 교사들의 숙소는 비교적 탈출이 쉬운 5층 로비 옆이었지만, 4층 객실 곳곳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던 모습이 목격됐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에도 학생들의 탈출을 돕느라 본인은 정작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아내 바보’였던 것으로 유명했다. 사고 당시 아내는 단원고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옆 학교 단원중 교사였다. 그의 아내는 “그는 언제나 자상한 남편이었고 아이들에겐 최고의 아버지였다”며 “지난 스승의 날은 유족들에게 너무 가슴 아픈 날이었다”고 남편을 추억했다.
아내는 사고 당일 아침 남편이 보낸 “애들을 돌보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추억을 바다에 묻고 3년 넘게 버텨왔다.
/안산=김준호·신병근기자 s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