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배회
/이재훈
햇살에 걸려 넘어진다
어제 먹은 술 때문인지
햇살에 걸려 넘어진다
그 긴 밤을 뜬눈으로 견디었다
붉은 눈을 하고서 무엇엔가
자꾸 걸리는 아침
햇살을 잉태한 건 밤이었다
나를 잉태한 건 밤이었다
누군가 가만히 내게로 왔다
밤새도록 먹은 것들을 토하고
있는데 햇살이 가만히 와서
내 등을 두드려준다
- 이재훈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길 위를 걷다 넘어질 때가 있다. 그 절망으로 밤새워 술을 마시며 괴로워할 때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희망이라 생각하는 햇살이 있기 때문이다. 새날을 몰고 오는 햇살을 보며 우리는 날마다 앞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그 밝음이란 욕망이 우리를 때로 어둠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긴 밤을 뜬눈으로 견디었다 붉은 눈을 하고서야 깨닫는다. 무엇엔가 내 마음이 자꾸 걸리는 아침이다. 모든 것을 토하고 또다시 시작하는 하루다. 공원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줄기 햇살이 가만히 와서 등을 두드려 준다. 살아야 하기에, 살아나가야 하기에, 우리는 햇살에 걸려 넘어져도 그 햇살을 향한 갈망을 버릴 수 없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