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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신의 미공개 부부초상화 발굴

조선조 마지막 인물화가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ㆍ1850-1941)의 작품인 부부초상화가 발굴됐다.

월간 ≪미술세계≫는 11월호에서 "조선후기의 명의였던 서병완(徐丙玩ㆍ1868-1947)과 부인 남원 양씨(1865-1926)의 초상화가 손자인 서인원(53)씨에 의해 공개됐다"고 보도하고 "1925년에 제작된 이들 작품은 석지가 전성기를 누리던 때의 화법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단 바탕의 채색화인 부부 초상은 전체 길이가 가로 62cm, 세로 115cm 내외로 석지의 다른 초상화와 비슷한 크기다. 이들 작품은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해 석지의 전성기의 필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술사가 조정육씨는 "석지의 현존 초상화는 미술관과 개인소장을 포함해 60여점밖에 없다"면서 "그중 여인상은 3점 가량에 불과한데, 이번 작품은 다른 그림에 비해 상태가 매우 양호한 데다 완성도 또한 아주 높아 의미가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대대로 그림을 보관해왔다는 서씨는 "석지 채용신은 전북 익산에서 할아버지와 이웃해 살았던 화가였다"고 말하고 "두 분의 친분이 무척 두터워 초상화를 그리게 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석지는 고종의 어진을 비롯해 이하응(李昰應), 최익현(崔益鉉), 황현(黃玹), 최치원(崔致遠), 김영상(金永相), 전우(田憂) 등의 초상을 남겼으며 `운낭자 27세상' `황장길 부인상' 등 여인상도 그렸다.

석지는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초상화 제작은 중인 출신의 도화서 화원이 맡았던 관례를 깨고 양반 초상화는 물론 비양반 여인의 인물화도 제작해 주목받았다.

무관의 아들로 태어난 석지는 무과에 합격해 가문의 전통을 이었으나 극세필을 사용해 얼굴의 세부 묘사에 주력하는 이른바 '채석지 필법'을 창안해 인물화 분야에서도 일가를 이뤘다.

특히 정주군수로 보임되던 1904년부터는 최익현 등 애국지사와 항일의병의 초상을 주로 그렸는데, 이는 독립운동의 전개와 기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연유로 미술계 일각은 채용신을 20세기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히는 김은호(金殷鎬)보다 높이 평가한다. 김은호가 채색화로 이름을 날렸지만 전통성이나 독자성을 찾기 어려운 친일 미술가였다면 채용신은 전통과 근대미술의 융합을 꾀한 항일의식의 화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독자적 기법과 민족적 주제의식을 가진 그였으나 1943년 '채용신 유작전' 이후 이렇다할 사후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지난해 6월에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의 '채용신 탄생 150주년 기념전'을 계기로 재조명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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