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천
/유홍준
구름 같은 까마귀떼 저 하늘을 쪼았다 뱉는다 하늘밖에 더 뜯어먹을 게 없는
눈뜨지 마라 파먹을라 동안거에 들어간 하늘의 얼굴이 산비탈처럼 말랐다 두 볼에 골짜기가 패었다 하늘 눈(目)에서 피가 흐른다 서산마루를 타고 흘러내린다
주둥이마다 피를 묻힌 까마귀들이 앞산 넘어간다 금방, 캄캄해진다
- 유홍준 시집 ‘나는, 웃는다’ / 창비·2006년
북천, 어둠과 추위, 죽음이 연상되는 북쪽, ‘북천’이라는 이름은 저승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얼어붙은 뗏장 같은 논바닥 위에 새까맣게 앉아있던 까마귀 떼, 한꺼번에 날아오르며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던 그 하늘 그 들판이 떠오른다. 시인의 소월시문학상 수상작 ‘북천-까마귀’는 바로 이 ‘북천‘의 연장선으로도 보이는데, 그것이 北川이든 北天이든, 북천은 늘 시인의 모티브이자 추동력이며 시의 궁극이라고 한다. 시인이 바라본 하늘은 우리가 언젠가는 가야만 될 하늘이다. 이 시집 제목 ‘나는, 웃는다’와 반어법 선상에 있다고도 보인다.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