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필
/오영록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있다
좌로 우로 흔들다가 파르르 떨리기도 했다
회전체로 썼다가 흔들림체로 쓰다가
허리를 꺾어 쓰는 저 공손체
풍경 위에 알몸으로 쓰는 돋움체
매미에게 작별인사를 쓸 때는 단풍체
잠자리를 꼬드길 때는 회전체
귀뚜라미를 부를 때는 가늘고 긴 요염체
파란 바탕에 하얀 글씨
하얀 바탕에 빨간 글씨
이리 읽어도 저리 읽어도 빙글빙글 팔방의 여덟 문장
달이 밤새 읽다 읽다가 못 다 읽은 저 문장
어깨너머로 슬쩍 훑고 가는 오동잎
태초의 저 언어
눈에는 보이나 읽을 수 없는
온몸으로 쓰는 저 상형문자
- 오영록 시집 ‘빗방울들의 수다’
코스모스는 식물 중에서도 매우 연약한 꽃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온몸을 흔든다. 그것은 이 세상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삶의 현장 속에 내몰려져 있는 우리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직면한 상황과 장소, 상대에 따라 흔들림체가 되고 공손체 돋움체 단풍체 요염체가 된다. 내가 나를 관리하는 그러한 처세술을 보면서 우리는 씁쓸하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 뒤에는 누구에게도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속사정이 있기도 한 것이어서 꼭 부정적인 눈으로만 볼 수도 없다. 그리고 ‘어깨너머로 슬쩍 훑고 가는 오동잎’이 도무지 알 수 없어 ‘눈에 보이나 읽을 수 없는 상형문자’ 같은 육필, 그 전략을, 오늘 나도 나도 모르게 쓰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