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꽃잎 속
/김명리
퇴락한 절집의 돌계단에 오래 웅크리고
돌의 틈서리를 비집고 올라온
보랏빛 제비꽃 꽃잎 속을 헤아려본다
어떤 슬픔도 삶의 산막 같은 몸뚱어리를
쉽사리 부서뜨리지는 못했으니
제비꽃 꽃잎 속처럼 나 벌거벗은 채
천둥치는 빗속을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내 몸을 휩싸는 폭죽 같은 봄의 무게여
내가 부둥켜안고 뒹구는 이것들이
혹여라도 구름 그림자라고는 말하지 말아라
네가 울 때, 너는 네 안의 수분을 다하여 울었으니
숨 타는 꽃잎 속 흐드러진 암향이여
우리 이대로 반공중에 더 납작 엎드리자
휘몰아치는 봄의 무게에
대적광전 기우뚱한 추녀 또한 뱃고동 소리로 운다
- 김명리시집 ‘제비꽃 꽃잎 속’ / 서정시학
이 지극한 세계를 두고 무슨 말을 하리요. 시집 첫머리에 쓴 시인의 말을 발췌해 대신한다. “늙고 죽고 슬퍼하고 고통에 시달리고 절망에 빠지는 존재인 인간은 아름다운 것과 친교를 맺음으로써 해방될 수 있다”는 구절, 언젠가 책을 읽다가 적바림해 놓은, 부처가 제자 아난에게 말했다는 구절에 새삼 가슴이 먹먹해진다. 수 없이 찢고 지우고 다시 써내려가는 한 줄의 문장, 잠든 혼을 일깨워 쓰는 한 편의 시가 생의 온갖 부잡함을 씻어내 주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되묻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