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수
아버지가 건강한 밭이라면
실뿌리 주변마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이 살고
지렁이를 잡아먹는 두더지가 살고
아랫도리로 독사가 스슥스슥 지나가고
성질 사나운 불개미들이
생사를 건 사투를 벌일 게다
아버지가 건강한 감자밭이라면
아버지의 푸른 팔뚝에서
사마귀가 사마귀를
잎사귀처럼 뜯어먹을 것이다
아버지가 건강한 풀밭이라면
아버지를 뜯어먹는 것들과의
야생의 동거는
조용한 날이 없을 게다
- 장인수의 시집 ‘적멸에 앉다’ 中에서
아버지가 건강한 밭이라면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두더지가 굴을 파듯이 나도 나의 새끼들과 함께 울기도 웃기도 하면서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때에는 독을 품은 독사도 성질 사나운 불개미들도 아버지의 푸른 팔뚝에서 사마귀를 뜯어먹는 사마귀도 화사한 생명력으로 빛이 날 것이다. 반대로 내가 아버지를 뜯어 먹지 못하고 내 새끼들도 나를 뜯어 먹지 못하여 죽은 듯 조용하기만 한 병든 시간들이라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조용할 날 없는 야생의 동거를 하고 있다면, 홀랑 벗고 춤이라도 출 일이다, 생명을 즐길 일이다.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