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변주
/김창희
무슨 전령인 듯 모사꾼의 목소리 같은 바람이 휘청거리네
낙엽들은 제 몸을 굴리며 다가오는 계절에 서문을 쓰고
허공에만 떠 있는 구름은 슬픔이네
그 슬픔은 알고 싶지 않았으므로 모르는 것으로 할 것이네
늙은 사내의 오줌발 같은 가을비가 붉은 길을 끌며
달아난 옛 애인의 이름 석 자를 불러 세우네
신기가 오는 듯 낮은 호명으로 입 속을 맴돌던 그 남자
백혈병이란 소문
못 들은 것으로 할 것이네
그리고 행여 봄이란 게 쳐들어와 온천지 들판에 난리가
난다고 한들
그 또한 내사 모르는 일이네
내사 모르네
- 김창희 ‘스토리문학 엔솔로지 (구름의 집중력)’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떠도는 구름처럼 먼 거리에만 있던 형체를 화들짝 눈앞에 마주친 것처럼 들려오는 한 가닥 소문, 그것이 내 기억의 저편에 자리하고 있는 이름이라면, 신기가 오는 듯 낮은 호명으로 입속을 맴돌았던 한때의 사랑했던 사람의 일이라면, 봄이란 게 쳐들어와 온천지 들판에 난리가 나듯 심사가 어지러워질 일이다. 하물며 들어서는 안 될 슬픈 소식이라면 그 난감함을 어찌할 것인가. 정녕 들었어도 듣고 싶지 않았던 소식, 그 해결책 없는 일에 화자는 무관심 변주를 하기로 한다. 내사 모르는 일이네 모르는 일이네 주문처럼 혼잣말하며 혼란해진 마음을 다독인다. 그리하여 외면해나갈 수밖에 없는 그 안타까움이라니, 그렇게 지나간 사랑이란 내 몸의 그림자처럼 눈앞에 그 실체를 언뜻 꺼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