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신중년 경력설계 강의에 자주 출강한다.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경우도 있고 공무원 혹은 기업체에서 정년 퇴직을 앞둔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러 가는 경우도 있다. 수강생이 누구냐에 따라 강의실 분위기가 차이 난다. 상대적으로 강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수강생들이 공무원이다. 물론 필자의 강의 수준이 기대치에 못 미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했을 때 가장 큰 이유는 재취업에 대한 간절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은 정년 퇴직 후 공무원 연금이 나온다.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노후에 경제적 부담이 다른 직업 군에 종사하는 분들보다 여유가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년 퇴직 후 일자리를 구할 생각을 안 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공직 생활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일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무조건 쉬고 싶다는 분들이 대다수다.
필자는 공무원의 정년 퇴직 후 일에 대한 생각에 일면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공무원 분들에게 필자가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이제 100세 시대입니다. 정년 퇴직 후 살아가야 할 시간이 40~50년은 남았기 때문에 언제 어떤 상황이 내 앞에 닥칠지 모르니 일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말을 꼭 드린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가 일을 할 때 꼭 경제적 보상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만 일을 하지는 않는다. 사회참여, 자아실현을 위해서 일을 하기도 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다섯 가지의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매슬로우의 다섯 가지 욕구는 하위단계 순서로 1단계 생리적 욕구, 2단계 안전의 욕구, 3단계 사회적 욕구, 4단계 존경의 욕구,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로 되어 있다. 매슬로우는 하위욕구가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그 다음 상위욕구를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일이 인간 욕구 충족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하신 분들이 일을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자아실현 욕구 충족 측면에서 접근을 한다면 일은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 아닌 삶의 활력소가 되고 사회적인 보람을 얻을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실제로 미국에선 정년 퇴직 한 신중년이 일을 통해 사회적 보람을 찾자는 ‘앙코르 커리어’ 운동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시빅 벤처스의 설립자 마크 프리드먼은 자신의 저서에서 ‘앙코르 커리어’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앙코르 커리어’란 인생 2막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과 경력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도 의미와 보람이 있고 약간의 보상을 받으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을 의미한다. 정년 퇴직 후 경제적 보상 목적이 아닌 사회에 공헌하는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하신 분들은 ‘앙코르 커리어’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지금까지 공직에서 쌓았던 지식과 경험을 우리 사회에 선순환 시킨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신중년의 ‘앙코르 커리어’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에서 마케팅·재무 등 특정 분야 경력자에게 NGO 취업을 알선하는 프로그램과 헬스케어·교육 등 분야에서 신중년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신중년이 ‘앙코르 커리어’ 할 수 있는 분야나 일자리가 다양하지 못하다. 사회적 경제, NGO, 재능 기부 등의 분야가 이제 발전해 나가는 단계이고 활성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관련 분야의 성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제도적인 지원과 지역 단위에서 구인과 구직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 하신 분들은 다양한 도전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앙코르 커리어’ 분야를 발굴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속박으로써의 일이 아닌 일을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