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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진정성 있는 화가, 진정성 있는 관객

 

마네가 여인들의 피부와 드레스를 두터운 칠로 사정없이 평평하게 뭉개놓았을 때, 르누아르가 그림자를 표현한답시고 인물과 공간에 얼룩덜룩한 파란 칠을 덧발랐을 때,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그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기교는 정교해질 대로 정교해졌고, 그림을 바라보는 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화가들이 이루어놓은 모든 예술적 기교를 비웃기라도 하듯, 물감을 푹푹 찍어 거칠게 발라대던 그들이었으니, 평론가들과 관객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낯설음은 곧 가셨고, 대중들은 인상주의 작품들에게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작품은 자유분방하고 새로웠으며 유쾌했다. 활력과 변화가 넘치는 도시의 기운을 효과적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이만하면 좀 더 혁신적이고 새로운 기법에도 관용을 베풀 법 한데, 유독 폴 세잔과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매우 천천히 찾아온다. 대중들은 그 두 사람이 그리는 그림에서는 유쾌함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세잔과 고흐는 화가로서의 인생 대부분을 철저한 외면 속에서 보내야 했다. 언젠가는 세상의 인정과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작업을 했지만 기회는 잘 찾아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대중들의 취향에 맞추어 그림을 그릴 만한 위인들도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고립된 생활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가족들의 근근한 지원으로 작업을 어렵게 이어갔다.

세잔은 고흐보다 이십여 년 먼저 출생한 인물이지만, 두 사람 모두 인상주의의 그늘 아래 활동해야만 했다. 두 사람은 간혹 후기 인상파 화가들로 분류되곤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지닌 이들이었으므로, 그러한 분류는 엄밀히 말하면 맞지 않다. 물론 인상주의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인상주의 회화 보다는 좀 더 진정성 있는 회화를 추구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세잔은 대상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간결한 조형미를 끄집어냈던 반면, 고흐는 오롯이 인간적인 것을 추구했다. 고흐의 회화는 열정과 감성으로 이글거렸고, 생활고로 어려워하는 민생들을 위로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모두 의미 있는 작업들이었지만 유쾌함과 즐거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중들은 핏기 없고 딱딱해 보이는 세잔의 인물화나 어두컴컴한 방안 식탁에 모여 앉아 감자를 먹는 사람들로부터 혐오스러움까지 느끼곤 했다.

물론 오늘날 사람들은 세잔과 고흐야 말로 현대 미술사의 포문을 열었던 진정한 선구자라고 말한다. 이들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데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 역시 형태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 보다는 개성을 표현하는데 관심을 두었지만, 세잔과 고흐는 더 나아가 대상과 풍경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을 표현하길 원했다.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이란, 세잔에게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간결한 그 무엇이었고, 고흐에게는 인간미와 짙은 감성을 의미했다. 200년이 지난 지금 후배 예술가들은 그 당시 세잔이나 고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법과 혁신으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고흐가 다시 살아나 이들의 작업을 보면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빠뜨린 허울 밖에 없는 작업이라고 혹평을 내리며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다. 선 하나를 그어도 진정성 있게, 자신의 온 영혼을 담아서 그렸던 고흐였기에 그의 작품 전체에는 열정이 이글거리고 있다. 광기 어린 삶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그러한 그림은 완성될 수 있었다. 진정, 고흐 같은 화가는 그 이전에는 없었다.

1889년 작 ‘별이 빛나는 밤에’는 거침없는 소용돌이가 온 밤하늘과 마을을 집어삼킬 듯하다. 커다랗게 화면을 횡단하며 서있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밤하늘에 박혀있는 빛들도 불길하게 소용돌이 치고 있다.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과연 무얼 뜻하는 일일까. 그것은 인생을 이처럼 극단으로까지 몰고 갈 수도 있는 것일까. 반 고흐의 일생을 담은 영화에서 동료 세잔은 그의 작품을 보고 ‘대작이 될 것이지만, 오래 보다 보면 사람을 미쳐 버리게 만든다’고 평했다. 반 고흐의 작품이 걸린 전시회는,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를 불문하고 늘 북새통을 이루곤 한다지만 그의 작품 앞에서 발견하곤 하는 것은 공감 불능병에 걸려버린 냉가슴일 때가, 나의 경우에는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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