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시간 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교복 입은 소녀들의 초록잎처럼 싱그러운 웃음소리와 재잘거림이 밋밋한 도시를 깨우고 그 날렵한 걸음걸이가 시선을 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몸에 딱 붙는 타이트함에다 짧기가 그지 없는 치마길이에 말갛고 투명한 피부가 보여져야 할 얼굴은 하얀 분칠과 빨간 립그로스가 소녀의 얼굴에 얹혀있다.
외출준비를 할라치면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꾸미기를 하게 된다. 먼저 청결의 목적으로 샤워를 하고, 미용을 목적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더 나은 피부를 목적으로 로션을 바르고 스킨으로 정돈한 후 크림을 펴 바른다. 자외선을 차단시킬 목적의 지수가 높은 썬크림을 바른 후 파운데이션으로 피부톤을 좀 더 화사하게 톤 업 시켜본다. 이 다양한 목적들이 달성되었는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나름 가진 화장술의 최고를 발휘했기에 이만하면 하고 눈썹을 그려본다. 늘 내눈썹이 맘에 들지 않다. 잘 그려지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적이 더 많은 듯하다. 좀 더 색다름을 목적하는 날엔 아이섀도우도 등장하지만 바쁘게 뛰어 나가야하는 핑계로 생략한다.
화장의 포인트는 입술에 있다. 다른 화장품은 한가지로 닳도록 쓰지만 립스틱은 열 개정도를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사용한다. 거의 비슷하고 무난한 색이어서 손이 가장 빠르게 가 닿는 곳에 있는 립스틱을 들어 바른다. 긴 준비의 화장에 이런 다양하고도 섬세한 목적들이 숨어있다.
대학 4학년 때까지 화장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화장은 어른들이 행사가 있을 때나 격식을 차리려 하는 것으로 알았다.
2018년의 소녀는 교복을 입고서도 왜 화장을 하고 1984년의 대학 4학년이었던 나는 왜 화장이 부끄럽게 여겨졌을까.
꾸미는 것은 단지 화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머리모양과 옷차림, 악세사리나 가방에 구두까지 지금은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폭넓은 선택이 가능하다. 꾸며서 만족하고 꾸며서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세대다.
어린 소녀는 화장을 하지않는 것이 좋다라는 생각을 가진 세대와 이 자유로움을 더없이 누리는 세대가 공존하고 있기에 화장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적에 대해 서로의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
인간의 꾸미는 행위의 시작은 환경에 대처하다 우연히 시작된 것으로 짐작한다. 사냥을 하다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식물의 줄기로 질끈 묶었더니 사냥감도 더 잘 보이고 뛰어도 걸치적거리지 않은데 주변에서 멋지다는 칭찬까지 받게 된 것이 멋지게 보이려는 꾸미기의 시작이었다. 아름다운 부분은 돋보이게 하고 추하고 약한 부분은 고치거나 감추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신분이나 계급을 구별하기 위해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위장하기 위해, 신에게 제사 드릴 때 일상과는 다른 모습을 위해 얼굴이나 몸에 그림을 그리거나 문신을 새기기도 했다.
그런 애초의 목적이 깊은 의식의 아래에 깔려 지금은 일반인과 차별성으로 어필 하고자 하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이 남들보다 더 강하게 보이거나 아름답게 보이고자 장식의 역할로 문신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TV 모 프로그램에서 나이든 남자연예인들이 머리를 염색하고 제모하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하나의 에피소드로 회자되기도 했었다. 그 어머니들이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면 어느 것을 허락하겠는가하고 묻자 둘 다 안된다고 거부하던 어머니가 선택한 것은 아무도 보지 않을 부위의 제모였다.
개성을 누리되 사회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긴 까닭이다. 각자 그 시대가 가르친 가치의 잣대로 기준을 세우고 상식과 도덕을 결정한다.
사회가 복잡하고 물질의 가치가 인간의 존재에 우선하게 되면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어 인정 받기 위해 우리의 소녀들이 화장을 선택한 것일까.
감히 지적할 자리에 있진 않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가 물어 논쟁하기 전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우리 소녀들의 속내가 화장으로 자신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