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김병호
저 끝에서 요구르트 아줌마가 걸어온다 엘리베이터에 먼저 오른 나는 ‘열림’ 버튼을 누르며 잠시 기다리는데
지금 엄마 일하고 있으니까 전화하지 마
야위고 딱딱한 목소리 타박타박 타들어 가고 솔기 타진 비밀을 엿본 것처럼 뜨거워 서둘러 ‘닫힘’ 버튼을 누른다
여름휴가로 텅 빈 한낮, 아이 몸통만 한 가방을 매고 뒤뚱거릴 엄마나 종일 혼자 남아 엄마만 기다릴 아이가 떠올라
올라갈 층을 차마 누르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만,
아이의 얼굴을 알 것도 같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다. 뙤약볕이 집어삼킨 아스팔트가, 반 건조된 오징어처럼 흐물흐물하다. 게다가 여름휴가로 도시의 반이 떠나버린 듯하여, 이 ‘폭염’의 기세는 더욱 맹렬하다. 시인은 땀을 훔치며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저 끝에서 요구르트 아줌마가, 바쁜 걸음으로 뛰는 듯 걸어온다. 시인은 재빠르게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지금 엄마 일하고 있으니까 전화하지 마”라는 짧고도 단호한 목소리가 들린다. 순간 그는, “야위고 딱딱한 목소리 타박타박 타들어 가고 솔기 타진 비밀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들어서는 안 될 개별적이면서도 은밀한 생활의 목소리들- “아이 몸통만 한 가방을 매고 뒤뚱거릴 엄마나 종일 혼자 남아 엄마만 기다릴 아이”의 어찌할 수 없음과 투덜거림이 시인의 귓속에서 날뛰기 시작한다. 그는 서둘러 ‘닫힘’ 버튼을 눌렀지만, 올라갈 층을 차마 누르지 못한다. 요구르트 아줌마도 낯 뜨거운 듯 침묵하는데, 가만, 그 아이의 표정이 눈에 밟힌다. 시인의 어린 시절도 그러했기 때문일까.
/박성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