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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논단]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

 

12등급에서 3 또는 5등급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을 대폭 줄이자는 지도자가 있었다.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실력이 좋은 학생을 구분해낼 수가 없어서 선발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진짜 실력(점수였겠지?)’이 드러나지 않아 운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황당한’ 입시제도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판하는 쪽은 공공연히 고함을 질렀다면 지도자의 관점을 지지하는 쪽은 ‘꼭 실현돼야 할 과제가 맞기는 한가?’ 싶도록 조용했다. 지도자가 거센 폭풍처럼 몰아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몰라도 웬만하면 포기하고 말기를 기다렸을 수도 있고 현실적 방안 마련과 추진과정이 지난하지 싶어서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지도자의 주장은 힘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됐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지도자 체면을 감안했는지 9등급으로 결정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는데 그날 국정회의를 마치고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온 교육부총리는 궁금해 하는 직원들에게 다행한 결정이 이루어졌다면서 회의 경과를 알려주었다.

교육의 본질 회복이나 미래사회를 위한 교육혁신 같은 걸 떠올리면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럴 경우 어떤 결정이 더 바람직한가에 대한 판단에는 또 다른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당시의 그 결정은 가능한 선택사항 중 한 가지였고 현상유지를 통한 안정 우선의 결정이었다. 다만 ‘논의의 시각에 왜 그처럼 뚜렷한 차이가 있었을까?’ 잊어서는 안 될 의문을 잊고 만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0.1점을 두고 피나는 경쟁을 벌여야 하는 판국에 극단적 평등 이념을 바탕으로 일정 점수대를 동일 등급으로 묶으면 수능이 무력해져서 입시경쟁이 사라질 것이라는 “멍청한 구상”이었다고 대놓고 비난했다. 멍청한? 0.1점이 일생을 좌우하는 세상에서는 멍청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런 ‘점수전쟁’이 과연 제정신일까?

우리 사회에는 엘리트 교육 혹은 경쟁력을 강조하는 관점과 사회적 형평성, 사회통합을 잊지 않는 평등주의적 관점이 병행돼야 한다는 견해를 수용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런 견해를 홀대하고 어느 한쪽에 손을 든다. 수월성이면 수월성, 형평성이면 형평성, 한 가지만 추구하자는 것이다. 두 관점을 다 인정하면서도 한쪽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 지도자의 생각을 즉시 외면했고 너무 일찍 잊었다. 그는 능력이 좋은 학생은 그냥 둬도 잘 배운다고 했다. 좋은 교육자, 좋은 학교는 어떤 학생을 맡아도 잘 가르치는 교육자, 잘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냐고 물었다. 좋은 대학은 웬만한 수준 이상의 학생이면 잘 가르쳐내는 대학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수능 1등급이라면 다소간 점수 차를 보이더라도 가르치고 배우기 나름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 주장이 합리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교육은 그 길을 지향해야 마땅하다는 걸 인정한다.

학자들은 지식이나 정보의 단순한 이해와 암기를 벗어나 미래사회의 삶에 필요한 역량을 갖춰야 하며 비판적 사고력, 의사소통, 협력, 창의성 등이 핵심역량이라는 것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학생의 능력에 대한 정의와 학생 선발 장면은 외면하고, 여전히 98점과 99점은 다르다는 점수경쟁 논리에 순종하고 있다. 세상의 지식들에 관한 진위(眞僞)를 일률적, 획일적으로 ①~⑤ 안에 넣어놓고 그걸 찾아내는 훈련에 집중하게 하고, 수십만 명의 정교한 점수 차를 생산해내는 일에 순응한다.

한동안 자율형 사립고 존폐 문제로 걱정이 많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교육평가의 본질을 회복하지 않으면 문제가 자꾸 드러날 수밖에 없다. 성적이란 무엇인가? 좋은 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좋은 학교가 있다면 누가 입학해야 하는가? 많이 암기한 학생? 왜 그런가? 그게 교육적으로 공정한가? 학교와 교육은 공정해야 한다. 당연하다. 학교가, 교육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우리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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