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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악몽

소련군과 독일군 사이에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판세를 연합군 쪽으로 기울게 만든 분수령이었다.
1941년 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독일군은 22만여 명의 전사자를 낸 채 패배했으며 소련 역시 수많은 인명피해와 국토의 초토화를 경험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영국의 역사 저술가 앤터니 비버는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서해문집 刊)에서 이 전투의 시작부터 끝까지 낱낱이 밝혔다.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스탈린그라드는 소련의 주요 산업이 모인 곳이자 카프카스 지방의 유전과 주요 지역을 잇는 석유공급로였다. 히틀러는 이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33만명의 나치군을 보냈다.
독일군은 막강한 화력과 효율적인 부대편제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스탈린그라드로 진격, 개전 이틀 만에 소련군 전투기 2천 대를 파괴했다. 소비에트의 '붉은 군대'는 최후의 한 명까지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처음의 승승장구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볼가강까지 밀려난 소련군은 완강히 저항했고, 10월 중순 무렵부터 시작된 추위와 보급품의 부족이 병사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11월 중순 소련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해 독일군을 포위했다. 독일군은 극도의 혼란과 불안에 휩싸여 악몽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병사들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들끓는 이 때문에 미친 듯이 몸을 긁어댈 때는 그래도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어느 병사는 자신이 잠든 사이에 쥐가 동상에 걸린 자신의 발가락 두 개를 갉아 먹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저자는 히틀러의 광기와 독선이 독일군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평한다. 이 '스탈린의 도시'를 반드시 점령하겠다는 히틀러의 집착은 오판-전투에서 패배-독일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1942년 2월 2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독일군 9만1천여 명은 모두 소련에 항복 했다. 독일의 패배를 직감한 히틀러는 더 이상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지 않았다고 전한다.
"왼손은 약간 떨리기 시작했고, 등은 구부정하게 굽었으며,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었고, 두 눈은 튀어 나왔으나 전의 광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자는 소련과 독일 병사들의 전쟁일기, 개인적인 메모와 편지, 소련 비밀경찰(NKVD)의 포로 조서, 각종 보고서의 인터뷰를 통해 590일 간의 전투를 상세히 기록했다. 안종설 옮김. 616쪽.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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