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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장수프로그램과 진행자

 

 

 

 

 

텔레비전 화면에서 송해를 볼 때마다 아련한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란 제목으로 1972년에 시작했다가 1977년 4월까지 진행했다. 1980년에 ‘전국노래자랑’으로 재탄생한 뒤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1994년 4월까지 5년 11개월 동안 맡다가 몇 개월 다른 사람이 맡던 것을 1994년 10월부터 다시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뒤에 맡은 기간 만도 26년, 그 전까지 합치면 30년이 넘는 세월이다. 얼마전 그만 둔 강석, 김혜영은 각각 36년, 33년 동안 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진행자의 재능 여부를 떠나서 특정인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비슷한 경우로는 ‘가요무대’가 있다. 1985년 11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사회는 김동건 아나운서가 맡고 있다. 2대째인 1985년 11월부터 2003년 6월을 진행한 뒤 다시 2010년부터 4대째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4대만 본다면 10년, 2대 9년까지 더하면 19년을 같은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 해당 프로그램의 상징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와는 달리 진행자가 바뀌면서도 장수하는 경우도 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프로다. 1964년 ‘라디오 서울’(RSB)에서 첫방송을 시작한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동양방송(TBC)을 거쳐 한국방송공사(KBS)로 넘어간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성화 아나운서가 초대 진행을 맡은 이후 37명째 진행자가 바뀌었지만 같은 타이틀로 56년을 이어 오고 있다. 1991년 프로그램 개편으로 폐지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이듬해에 같은 제목으로 다시 살아나 최장수 프로그램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1969년부터 시작해 오남열, 차인태, 이종환, 조영남, 이문세, 이휘재 등 27명의 진행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5월부터 김이나 작사가가 27대 진행자를 이어 받았다. 역대 진행자들은 각각 다른 솜씨의 진행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진행자가 바뀌어도 프로그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 이어 장수 프로그램으로 통하고 있다.

어느 진행자가 특정 프로그램을 오래 맡고 있다면 나름의 개성이 있거나 방송국의 전략적 의도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특정한 프로그램이 장수하는 것은 탓할 일이 없다. 특정한 진행자가 장수하는 것과는 다르다. 방송은 공공재적인 성격을 지닌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동원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진행자가 오래될수록 해당 프로그램은 진행자와 동일시되거나 진행자가 그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본인이나 기획자가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사유화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특정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장수하면 상대적으로 진행자의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된다. 널리 알려질수록 친근함도 높아져 유명인이 되기 쉽다. 어느 진행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는가 하면 곳곳에 기념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 기여도가 큰 인물 중에서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진행자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보내기까지 한다. 특정 프로그램에 광고를 붙이는 일은 진행자가 결정하는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프로그램 진행과 광고를 함께 듣는 기분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유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방송을 사유화하는 것은 방송의 공공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진행의 능숙함 여부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해당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능숙하다거나 그만한 진행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안일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진행자가 바뀌어도 프로그램은 온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밤을 잊은 그대에게’, ‘별이 빛나는 밤에’는 증명하고 있다. 세상 모든 분야에는 정년이 있고, 정년이 아니더라도 물러 나야 할 때가 있다. 공공방송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공재인 방송이 특정인의 노후를 지키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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