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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도시의 감성 풍경, 카미유 피사로

 

장마철이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비 오는 날 창밖 풍경도 그전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도로가 저벅저벅 잠기면 세상은 물그림자를 머금은 채 매끈해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카미유 피사로가 그렸던 풍경화의 감성이 절로 떠오른다.


당시 피사로는 파리의 숙소에 머물며 창밖에서 바라본 거리와 광장의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시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어 실내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완성된 작품들이 차분하고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슬기롭지만 어쩔 수 없는 집콕 생활을 해야 하는 요즘 우리들의 사정에도 잘 들어맞는 작품들이다.


오페라 거리, 몽마르트 언덕, 튈르리 광장 등의 풍경은 시간대별로 그리고 계절별로 각기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작품에 펼쳐지는 시간과 계절의 변화가 어찌나 섬세하고 탁월한지 감성 드라마를 감상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중에서도 1898년에 완성된 ‘비 오는 날의 오페라 거리’는 안개 낀 하늘과 흠뻑 젖은 도로의 표현이 일품이다. 비 오는 날 차분한 감성에 흠뻑 빠지고 싶다면 이 작품을 찾아서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하지만 피사로가 감성적인 표현을 추구한 화가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던 화가이다. 사실적인 표현 속에서 감성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화가의 감성이 질펀하게 펼쳐진 작품이 아니다. 화가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작품은 따뜻한 감성을 전한다. 이는 피사로의 작품이 지닌 참맛이다.


이는 인상주의자로서 한결같았던 그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그는 정석에 가까운 인상주의 화풍을 끝까지 고수했던 최후의 인상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피사로는 인상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한때 인상주의 안에서 활동했던 밀레는 좀 더 자유분방한 터치와 색감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세잔은 구성에 더 치중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피사로는 동료와 후배 화가들이 개성을 발굴해가는 와중에 충실하게 가장 인상주의다운 화풍을 고수했다.


피사로의 파리 풍경화에서 포착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매력은 그날의 기후에 따라 다른 기운과 움직임을 지니고 있는 군중들의 모습이 풍경화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피사로가 먼 거리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화면 속 사람들은 그저 크고 작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한 저명한 평론가는 피사로의 작품을 보고 화가 나서 “만약 나도 이 거리를 걷고 있다면 나도 이렇게 보이는가?”라고 질문했다 한다. 희한하게도 그 점들은 눈 오는 거리 사람들의 조심조심한 발걸음, 새벽 동이 틀 무렵 분주한 이들의 감정을 한껏 담고 있다. 그리고 대중들이 띠고 있는 시시각각의 활기는 풍경화 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피사로는 실내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처지였지만 분명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그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전에 완성했던 풍경화에는 노동자, 농민, 도시인이 자주 등장하곤 했다. 현재 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모네에서 세잔까지’전에서는 피사로의 인물 스케치와 풍경화가 여러 점 전시되고 있으니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피사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도시의 곳곳에서 동네와 거리 풍경을 다루는 프로젝트들을 주변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 특히 사진이나 영상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피사로의 작품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사진과 영상 역시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담고 있으면서도 동네와 작가의 감성을 우회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 성북구 종암로에 위치한 문화공간 이육사의 ‘아는 동네’전을 다녀왔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대중에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전시다. 스톤김 작가는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동네의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담았으며, 이현철 작가는 동네를 거니는 이 특유의 시선을 카메라 영상에 담았다. 거리를 걷듯 편안하게 관객들을 만나야 할 작품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작품에는 안타까운 심정이 한 겹 더 포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