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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 손때 묻은 가구를 닮은 작품

 

가슴기 살균제 피해 규모가 당초 발표된 것보다 훨씬 크다는 소식에 충격에 휩싸인 하루였다. 뉴스를 듣는 순간 가슴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던 그때 나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볼 수밖에 없었다. 가습기는 쓰고 있었으나 다행히 살균제를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무실이나 공공공간에서 가습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나 또한 그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몇 년 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는 사람은 필자 뿐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측하지 못했던 재난이 너무나 자주 우리 삶에 찾아오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나날인데 홍수 피해나 가습기 살균제 소식은 어느 때보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는 상품들은 즐비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자 만든 장치와 물건들이 오히려 우리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늘은 손때 묻은 할머니의 장롱과 같이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작품 두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조혜진의 개인전 ‘한 겹 Blurry layer’은 올해 초 통인보안여관에서 열렸다. 그는 자개농의 문짝을 수집하였고 그 위에 작업을 했다. 어른들의 방 한쪽 벽을 가득 채웠던 커다란 자개장이 이번에는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장롱 문짝 위에 자개를 오리고 붙여가며 그림을 그려나갔다. 골목길 위에 오붓하게 자리 잡은 가족들의 모습을 새겼는가 하면, 혜안이 담긴 문구를 새기기도 했다. ‘행복이 머 별건가요? 보고 싶은 사람 보고, 먹고 싶은 음식 먹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즐겁고 기쁘게 살면 그게 바로 행복인 거죠.’ 별거 아닌 그 행복이 깃든 소중한 보금자리를 작가는 친숙한 소재를 통해 전시장 안에 옮겨 놓았다.

 

슬기롭고도 어쩔 수 없는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주거 공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요즘이다. 집 안 곳곳에 놓인 정든 물건들이 마음에 위안을 주기도 한다. 작가의 작품 역시 익숙한 사물들처럼 보는 이들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한 겹’이라는 작품의 소재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다. 집 내부에 붙어 있었던 나무를 떼어 내어 커다란 캔버스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위에 자개로 커다란 나무를 그렸다. 창을 열면 언제나 우리를 반겨주는 소중한 존재가 작품 위에 새겨졌다.

 

김덕용의 ‘봄-빛과 결 Spring-The Light and Grain’전은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으며 얼마 전인 6월에 막 막을 내렸다. 한옥을 연상시키는 나뭇결 고운 창문들이 여러 개가 붙어있고 그 위에는 산수유가 만발한 풍경이 펼쳐졌다. 창문 모양으로 짠 나무들을 모자이크처럼 배치한 다음 작가는 단청기법으로 풍경을 그려 넣었다. 나지막한 창문을 열면 손닿을 듯이 가까운 풍경이다.

 

그 밖에도 작가는 창틀 모양의 나무 캔버스 위에 다양한 풍경을 펼쳐 보였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도 그려 넣었다. 작가는 나무 말고도 숯, 자개, 옻 등의 천연재료를 썼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가 이 재료들을 정성스럽게 다뤘고 또 다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작품은 손때 묻은 가구와 소품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과 부모님이 주셨던 애틋한 사랑도 절로 떠오른다. 작은 생명들과 하늘을 바라보며 꾸었던 어린 시절의 꿈들도 떠오른다.

 

현대의 미술작품에는 위트와 신랄함이 넘친다. 하지만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작품을 찾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작품은 새롭고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친숙한 느낌의 작품에 시선이 가는 것은 비단 강제적인 집콕 생활 탓은 아닌 것 같다.

 

필자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는가 보다. 코로나로 인한 제한적인 일상에 지쳐갈 때 독자들도 이 두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서 보기를 권한다. 작가들은 온라인 세상에서라도 관객들을 자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 창문에 새긴 파란 하늘은 그러한 작가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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