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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 ‘ 베빈다, 그 쓸쓸함에 대하여’ ①

  • 김여수
  • 등록 2020.08.26 06:02:19
  • 인천 1면

 

속내를 드러내기 전에 일단 일명 트바로티로 불리며 성악가수에서 트롯가수로 거듭난 김호중 씨에게 죄송하다는 말부터 해둔다. 올해 초, 한 방송사에서 히트 친 트롯경연대회 시리즈를 전회 몰입 감상한 친구가 심야에 전화해 4위한 김호중씨에 대한 격한 팬심을 토로했다.

 

동영상 검색으로 그를 찾아본 나의 일성은 ‘뭐야? 비디오 가게 아저씨같이 생겨 갖구!’ 였다. 한마디로 외모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이며, 그 탓에 노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막말 소감이었다. 그런데 신통한 주술처럼 그때 잠깐 들은 목소리가 귀에 걸려버렸고 이후 그의 모든 노래를 찾아듣는 팬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영업하지도 않는 ‘비디오 가게 아저씨’ 운운하며 외모로 속단했던 가벼움을 반성한다.

 

어쨌든 김호중 씨는 트롯으로 얻은 인기를 지렛대로 여러 방송에 출연, 성악가수 시절 부른 오페라, 대중이 원하는 팝송, 월드뮤직까지 두루 들려주는 전천후 가수로 활약 중인데 어느 날 가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를 불렀다. 함께 듣고 있던 친구가 ‘저 노래, 스페인곡 번안한 거잖아?’라고 아는 체를 한다.

 

포르투칼의 파두 가수 베빈다(Bevinda)의 노래 ‘이제 됐어요(Ja Esta)’가 원곡이고 이를 양희은 씨가 번안해 불렀다는 것이다. 사실은 거꾸로다.

 

2002년, 내한공연한 포르투칼 가수 베빈다는 우연히 양희은 작사, 이병우 작곡의 이 노래를 듣고 ‘파두(Fadu)의 느낌’이 있다며 번안해 불러 지구촌 히트곡을 만들었다. 가사도 거꾸로다. 양희은 씨의 작사는 청춘을 보내버린 이의 사랑의 회억에 대한 내용이라면 베빈다의 번안가사는 청춘을 강타한 사랑의 열병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내용이다.

 

‘어느 햇빛 쏟아지던 날, 당신은 내 곁을 떠났어요/ 텅 빈 침대를 남겨두고 매정하게 떠났죠/ 나는 몹시 울었어요/ 하지만 이제 됐어요/ 더 이상은 아프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사랑은 당신과 함께 떠났어요’

 

베빈다를 매혹시킨 ‘파두의 느낌’이 궁금해진다. 파두(Fadu)는 숙명,또는 운명이라는 뜻의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온 단어로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소네처럼 포르투칼의 대중가요다. 파두의 노랫말에는 유럽의 땅끝 나라 포르투칼의 지역적 숙명, 그 숙명에 기대 살았던 뱃사람들의 애별리고(愛別離苦)가 담겨있다.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배를 탄 남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던 여인들의 애타는 기다림, 만선의 기대를 저버리고 어부들의 죽음을 알리는 검은 돛을 달고 돌아오는 빈 배를 보며 무너지는 가족들. 여성 파두 가수들은 검은돛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열두 줄 포르투칼 기타인 기타하 포르투게사(Guitarra portuguesa)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베빈다도 내한 공연 때 검은 의상을 입고 관객에게 검은 포도주잔을 돌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신세대 파두가수 베빈다는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alia da piedade rebordao Rodrigues 1920- 1999)처럼 흐느끼듯 절규하듯 부르지는 않는다.

 

양희은 씨의 원곡 노랫말처럼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이다. 인생을 반 살아버린 세대나 젊은 세대나 모두 사로잡는 목소리다.

 

김호중 씨의 노래도 그랬다. 가수의 목소리에는 타고난 소리와 함께 과거 삶이 묻어있다. 할머니 손에 자랐던 외로운 성장기와 오랜 무명을 지난 그의 목소리는 코로나로 고립되고 앞날의 불안에 떠는 서민들에게 위로를 준다. 최근 과거사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데 부디 그의 노래가 파두에 담긴 숙명처럼 못 듣게 되는 일이 없기 바란다.

 

김호중이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와 양희은의 원곡, 그리고 베빈다에 의해 월드뮤직으로 재탄생한 ‘이제 됐어요(Ja Esta)’를 비교감상해 보길 권한다.

 

(인터넷창에서 www.월드뮤직.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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