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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스타의 스타트랙] 음악 저장소(貯藏所)

  • 손스타
  • 등록 2020.08.31 06:10:53
  • 인천 1면

 

사진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본인의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도와달라는 것이다. 작업 끝나거든 소주나 한잔 사라하고, 나는 그 친구의 작업실로 갔다. 설명을 들어보니 입관체험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이었다. 실제로 나를 포함한 이 작업의 참가자들은 한 사람씩 차례로 카메라가 여러 대 설치된 방 안의 관으로 들어가, 간접적으로나마 죽음을 체험하게 되었다. 앞서 들어갔던 여자는 울면서 뛰쳐나왔을 정도로, 그 현장의 분위기는 꽤 무겁고 진지했다.

 

나는 수의로 갈아입고, 흰 종이와 펜이 놓인 작은 나무 탁자에 앉았다. 입관에 앞서 유서를 쓰라 한다. 언질이 없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법했지만, 그 친구는 원하는 음악이 있으면 틀어주겠다고 했다. 방 한구석 스피커에서는 정체 모를 뉴에이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음악을 들으면서 유서를 써 내려갈 자신이 없었던 나는, 최후의 순간에 들을 노래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음악에 까다롭게 굴기 싫었지만, 내 마지막 순간에 적절한 음악을 찾고 싶었다.

 

쉽지 않았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을 생각하려니, 선곡은 더욱 힘들어졌다. 여태껏 들어왔던 수많은 국내외 음악가들 음악이 머리를 스쳐 갔으나, 고민 끝에 나는 밴드 펄 잼(Pearl Jam)의 ‘원스(Once)’라는 곡을 선택했다. 노래는 기존의 내 기억보다 묵직하게 시작됐고, 포효하는 보컬 에디 베더(Eddie Vedder)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몇 차례나 반복 재생되는 동안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당시 이 곡은 클럽이나 파티장에서 흘러나오는 박력 있는 댄스 음악의 몇 배의 볼륨으로 내 귀가 아닌 가슴을 울려댔다. 

 

나는 가까스로 유서를 쓰고 관 속에 누웠다. 관 뚜껑이 닫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히자 노래는 끊기고, 친구가 미리 준비한 ‘아이고’ 하는 곡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머릿속엔 온통 ‘원스’의 잔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후 내게 ‘원스’는 ‘마지막 순간’을 의미하는 음악이 되었다. 그들의 1집 첫 번째 트랙이 누구에게는 마지막이라는 것이 아이로니컬하지만 말이다.

 

노래방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가사를 외우지 않게 되었고, MP3가 나오면서 음반을 사지 않게 되었으며,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된 이래로 굳이 자신의 저장 공간에 파일을 들이려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0과 1로 이뤄진 세계에서 만들어낸 디지털 구름으로 언제든 들어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큰 노력을 하지 않고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한 순간의 특별한 음악의 가치는 그 형태가 변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불현듯 떠오르는 철 지난 노래의 멜로디, 휴양지에서 흐르던 이국적인 하모니, 귀갓길 작은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라디오의 음악, 이 모든 것이 각자에게 소중한 한순간을 각인시키는 최고의 매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의 모든 순간이 음악으로 인해 그 나름의 모습을 가지고 새겨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늘은 또 어떤 음악으로 나를 기억하게 될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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