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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보약]어긋난 민들레 사랑

 

 

어머니는 여수 바닷가 근처의 마을에 사신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맏딸의 집에 잠깐 올라오신 칠십대 중반의 그녀는 속쓰리고 잘 먹지 못하며 몸도 퉁퉁 붓고 기운도 너무 없다고 하며 내원하셨다. 허리와 무릎이 아픈건 오래되어서 치료받고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밭농사를 제법 크게 하시니 일이 끊임없는데 소화도 안되고 입맛도 없으니 잘 먹지도 않고 간단히 때우면서 쉼없이 밭일을 하셨다고 했다.

 

오랜 밭일에 까무잡잡하게 그으른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속에 웃는 눈매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곱게 숨어있다. 진료과정의 문답중 술고래 남편과의 50년의 경혼생활을 포함한 이야기에 ‘아이고 힘들어서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말씀하시는 중 ‘몸이 약하고 안좋다고 하니까 남편이 자신이 먹는 민들레 달인즙이 효과가 너무 좋다고 나에게도 한박스 달여 만들어줬는데 나는 맛도 별로고 속쓰리고 몸도 무거워지는거 같았어요’ 하신다. ‘그럼 그만 드시지 그랬어요’라고 말하니 ‘먹기 싫어서 안먹을려고 했는데 남편이 몸에 좋은건데 안 먹는다고 화내기도 하고 해서 억지로 먹었지요. 글고 나도 남편이 모처럼 해준건데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챙겨먹었지요’ 하신다. 민들레가 그녀에게 적절치 않은 상황을 설명드리고 몸을 자세히 살펴 진단하여 한약 처방을 하여 달여 여수로 보내었고 식욕과 소화기능을 회복하셨다는 말씀을 전해들었다.

 

그 후로 맏딸도 볼겸, 치료도 받을겸 1년에 한두번씩 상경하셔서서 농사일로 지친 몸을 회복할 한약을 짓곤 하셨는데 한번은 남편과 같이 오셨다. 그리고 나는 그때 왜 그렇게 부인에게 민들레즙을 권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체격이 크고 얼굴이 붉고 큼지막한 이목구비와 살집이 두둑한 마치 삼국지의 장비같은 혈색좋은 분이었다. 부인과 정말 대조적인.

 

민들레는 한약재로는 포공영으로 맛은 쓰고 달며 성질은 차다.(苦甘寒) 열을 내리고 해독하며 엉기어 있는 기를 흩어지게 한다. 약리 실험에서 항염증 및 항알러지 작용, 면역증강 및 항암작용, 간보호 효과, 혈액응고 억제작용, 항피로효과 등이 밝혀졌다. 성질이 차므로 몸이 차고 위장이 약한 그녀 같은 경우에는 복합처방속의 소량외에는 적절치 않다. 반면에 거의 매일 술을 먹고 체격이 크고 건장하고 식욕왕성한 그녀의 남편에게는 필요한 약재인지라 민들레즙만을 먹고도 몸의 컨디션이 나아졌으리라. 그래서 부인에게 선물을 했고 그렇게 민들레 사랑은 어긋나 버렸다.

 

진료 중 몸에 맞지 않는 단일약재를 한의사 처방이 아니라 식품으로 꾸준히 복용하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불편한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를 가끔씩 발견한다. 그때마다 이치를 설명하고 조정을 하곤 한다. 한약재를 일상에서 사서 복용할 수 있는 것은 식약 공용한약재에 속하기 때문인데 밥상에 흔히 쓰이는 생강, 대추, 여름철 삼계탕에 넣어먹는 황기, 수정과, 카푸치노에 들어가는 계피 등등 한약재들을 편하게 구입할 수 있게 한 제도이다. 식약공용한약재목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도라지, 오미자, 마(산약) 등을 포함하여 식품으로도 안전한 한약재가 다수 포함되어 있는 반면 뚜렷한 약성을 가져서 오래동안 장복을 하면 특정체질에는 오히려 컨디션을 저하시킬만한 것들도 눈에 띈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황금, 몰약, 금은화, 마인 등도 보여 흠칫 놀란다. 이런 약재들은 치료제로서 뚜렷하게 효과를 가지는 약재이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환자의 체질과 증상을 진단한 후에 특정한 상황에 처방했을 때 가능한 효과이기 때문이다.

 

면역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코로나 19의 시간이다. 노부부의 민들레처럼 우리가 건강하려고 먹는 것들에게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식약공용한약재의 정비와 관리가 꼭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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