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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우린 매일 살기 위해 죽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50년 전 평화시장 피복 공장의 재단사인 22살의 꽃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경제발전의 어두운 그림자로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죽어가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이다. 50년 전 자기 한 몸을 바쳐 인간의 존엄을 위해 열사의 분신으로 표현한 노동존중의 울부짖음에 우리는 함께 눈물 흘리고 기억하며 추모한다. 전태일 열사 피의 댓가로 우리사회는 그때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고도성장을 이루었고, 이제는 떳떳이 세계무대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는 아직까지도 숨은, 아니 숨겨진 전태일이 존재한다. 과연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노동환경은 변화 하였는가? 전태일 열사는 뜨거운 피를 우리 사회를 위해 바쳤건만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피지도 못하고 진 노동자의 꽃이 피어있다. 정부 통계자료를 보면, 작년 한 해 202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었고, 올 상반기에도 벌써 1101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독일 철학자 페터 비에리(Peter Bieri)는 ”일 없이는 존엄도 없다“라고 주장하며 일은 존엄의 문제라 역설한 바 있다. 과연 우리사회는 노동을 존엄과 연결하여 존중하고 있는가? 아니다. 덩치만 비대하게 자란 어린이처럼 산업경제 전반은 커졌으나 노동의 가치를 인간의 존엄으로 인식하지 않는 기업의 태도는 아직도 50년 전 그대로 미숙아처럼 남아있다. 그렇다. 경제는 발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계일 뿐이었다.

 

이제 상당 부분 노동환경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선되었다 하더라도 아직도 미숙아 상태의 노동형태가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택배노동자’들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이 힘든 고통의 나날을 이어가던 중 '코로나의 숨은 영웅'이라고도 불렸건만,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는 우리로 하여금 또다시 잊고 있던 전태일 열사를 떠올리게 했다.

 

생각해 보라. 50년 전 평화시장에서 하루 15시간의 고된 노동을 하던 전태일 열사와 지금의 택배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하루에 택배배달을 위해 몇백km 운전까지 하며 더 고되고, 더 처절한 노동을 하고 있다. 이에 ‘눈가리고 아웅’으로 택배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을 철저히 외면하던 택배회사들이 국민 앞에 사과하고 분류작업 인력투입 등의 대책을 마련한다고 약속했고, 정부 또한 지난 12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까지 발표했지만, 이는 명백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참으로 개탄스럽다. 그동안 그들은 이러한 사태를 진정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책임을 모면하려 원인을 방치한 채 대책을 서둘러 논하지 마라.

 

이렇게 회사로부터 ‘존엄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일지라도 택배노동자들은 오늘도 묵묵히 아무런 대책과 보장없이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을 새벽부터 부지런히 달려간다. 전태일 열사가 ‘살기 위해 죽은 것’처럼, 그들은 오늘도 ‘(먹고) 살기 위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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