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손스타의 스타트랙] 초심으로 돌아가자

 

드럼을 처음 연습할 때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종로 5가에 위치한 합주실로 연습을 하러 나갔다. 당시에는 드럼 스틱 이외에는 다른 장비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가방 안에 오선지와 메트로놈 그리고 드럼 스틱만 단출하게 넣어 다녔다. 약속된 합주실 이용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로비에 앉아 드럼 스틱을 꺼내 두드리며 손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지나가던 메탈 향기를 진하게 풍기는 긴 머리의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 드럼 연습할 때는 이 정도로 두껍고 무거운 스틱으로 연습해야 해.” 라고 이야기하며 엄지와 검지의 끝을 맞대어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낙원상가로 달려가 드럼 관련 악기사들을 뒤져, 가장 굵고 튼튼해 보이는 녀석을 사서 두드리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그 긴 머리 남자의 말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운동선수들을 연상하며, 훈련 혹은 단련의 일환 정도로 이해했다. 그렇게 꾸준히 하면 근력 역시 붙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기본적인 스트로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5백 원 정도의 두께를 지닌 그 드럼 스틱을 내가 제대로 컨트롤할 리 없었다. 손은 손대로 여기저기 물집이 잡히고, 손목과 팔꿈치는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스틱으로 연습을 하면 나중에 실전에서 본래 내가 쓰던 스틱을 잡고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몇 달을 꾸준히 그 괴물 같은 스틱으로 연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유명했던 헤비메탈 밴드의 드러머가 와서 이야기했다.
 
“그 스틱 뭐야? 왜 그런 걸로 연습을 해?”
 
십수 년 드럼을 쳐왔지만, 그런 두꺼운 스틱은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적당히 무게감 있는 스틱으로 연습을 하면 모를까 그런 스틱은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 역시도 여태껏 대고(大鼓)와 같은 전통악기를 두드리는 연주자들을 제외하고, 그 정도 두께의 스틱으로 연습, 연주하는 드러머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얼마 전 드럼 스틱이 다 떨어져 낙원 상가의 악기사에 다녀왔다.
 
한편에 서서 스틱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드럼 초년생이었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가진 돈이 넉넉지 않아 레코드 가게에서 몇 시간을 땀 흘려가며 CD 한 장을 골랐던 그 시절, 드럼 스틱 역시 그렇게 골랐다. 이 녀석 저 녀석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휘어지지 않았나 돌려도 보고, 주머니 속 만 원 한 장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 

언젠가부터는 늘 쓰는 스틱을 한두 다스씩 사 오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그때의 나처럼 한 자루 한 자루를 정성스럽게 골라봤다. 그리고는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새로 사 온 스틱을 잡고 드럼 세트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스틱을 고르는 짧은 순간이 가져온 감각의 변화는, 처음 스틱을 잡고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 두드리며 연습하던 드럼 키드 시절의 나를 불러내 주었다.

어느새 나는 과거 언젠가의 나와 함께 연주하고 있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들의 초심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들이 주변에는 많이 있다. 지금 자신의 손에 잡히는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들 안에서 분명히 찾을 수 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처음 그 두껍고 무거운 스틱을 권했던 긴 머리의 남자는 보컬리스트였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