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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묵의 미디어깨기] 리영희와 언론개혁

 

지난해 12월 5일은 리영희 선생(1929-2010) 10주기였다. 리영희 재단 등에서는 몇 차례 추모세미나를 열었고, 창비출판사에서는 새로운 《리영희 평전》과 《리영희선집》을 펴냈다. 추모 논술대회나 글쓰기 공모전도 열렸고, 리영희상 시상식도 이어졌다. 리영희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는 《다큐 리영희》 5부작을 제작하여 공개했다.

 

리영희선생 관련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리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리선생을 다시 소환하는 동력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이고, 시민의 열망이다. 리영희를 통해 검찰(법조)과 언론, 재벌과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한국 지배 권력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고, 동시에 한국사회의 근본적 개혁방향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리선생은 언론사 기자로 지낸 10여년을 포함하여 평생을 정론직필의 투사로 살았다. 반공주의와 파시즘체제, 베트남전쟁과 중국사회주의, 6·25전쟁과 미제국주의, 친일파와 일본군국주의, 분단체제와 통일, 수구권력과 언론매체 등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모든 ‘우상’의 본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군부정권은 물리적 탄압으로 응답했다. 언론사와 대학은 리선생을 내쫓았고, 검찰은 체포·구금·기소했으며, 법관은 그의 입을 막고 형무소로 보냈다. 이에 질세라 수구신문지들은 리영희를 ‘빨갱이’로 낙인찍었다.

 

리선생은 굴하지 않고 글로 싸웠다. 자신을 겁박하고 자의적으로 단죄하려는 권력의 주장을 검증함으로써 ‘진실의 심판대’에 세우고자 했다. 대표적인 글이 1977년 감옥에서 쓴 ‘상고이유서’다. 자신을 기소하고 감금한 군부파시즘체제와 검찰, 법원을 역으로 ‘기소’했다. 이성적 논증을 통해 우상의 허구성과 언론의 요설, 지배 이데올로기를 심판했다. 이후에도 지치지 않는 장구한 싸움을 통해 결국 그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웠다.

 

리영희에게 저널리즘은 비판이고 정명이고 실천이다. 언론인 리영희는 거의 죽어가는 그 날까지 모든 종류의 부당한 권력을 비판했다. 비판은 사물과 사상의 화려한 외피를 제거하고 본질을 드러내는 일이다. 비판의 다음 단계는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친일족벌언론(민족지), 기레기(기자), 허위조작정보(부실기사), 검비(검찰), 법비(법관), 반민족이권동맹(보수정당)…

 

이름을 바로잡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천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말년에 리선생은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시민 개개인의 힘뿐이라고 했다. 우리는 각자가 선 위치에서 우리를 옥죄고 약탈하는 부당하고 불의한 언론-검찰-법조-수구정치권-재벌로 이어지는 권력카르텔을 깨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언론비판과 언론개혁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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