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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1966년 그리고 2046년, 그 사이의 '화양연화'

 

팬데믹 시대에 왕가위의 2000년작 ‘화양연화’가 관객 10만 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역설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세상에 일정한 환멸을 느끼고 있으며 왕가위 식 탐미주의에의 탐닉을 탐욕스럽게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다이즘도 1차 대전 끝의 황량함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나왔다. 지난 4년 간 극우 반동의 광기에 지친 사람들이 이제 쉴 곳이 필요하다고 소리치고 있는 셈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첸 여사(장만옥)와 차오(양조위)의 이어질 듯 말 듯하는 불륜의 일탈처럼, 지금의 사람들은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을 관조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영화 ‘화양연화’처럼 정치적인 기호로 가득한 작품도 드물다. 이 영화는 스러져 가는 홍콩의 영화(榮華)에 대한, 그렇게 배신의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왕가위 식의 애처로운 송가(頌歌)이다.

 

홍콩의, 홍콩에서의, 홍콩을 위한 세상과 삶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그 같은 사랑과 애정은 더 이상 실현되지 않을 거라는 좌절이 담겨져 있다. 그런 정서의 기조(基調)는 왕가위의 또 다른 작품들인 ‘타락천사’와 ‘중경삼림’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화양연화’에서 중요한 정치적 키워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첸 여사와 차오가 만나고 사랑하는 연도다. 그들은 1962년에 만나 1966년 헤어진다. 이 기간은 홍콩 역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기간이다. 1967년의, 이른바 ‘홍콩 봉기’의 전조(前兆)가 짙게 깔리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식민통치를 받았던 홍콩은 값싼 노동력으로 자신들을 착취하던 영국령 정부를 향해 서서히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대중들의 그 같은 폭발 심리를 뒤에서 지원한 것은 대륙의 중국 공산당 정부였다. 당연히 영국은 이를 저지하고 탄압했으며 냉전 이데올로기의 시기였던 만큼 세계 여론도 홍콩 노동자들에게 백퍼센트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그 같은 사회 분위기는 영화에서 첸과 차오가 각각의 배우자들이 불륜을 저지르는 걸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 둘의 연애도 결국 끝은 안좋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모습과 닮아 있다.

 

 

홍콩은 결국 반환될 것인 바 서구 사회와 중국 공산주의 정부 사이에 낀 존재 같은, 실존의 불안감은 영화 속의 두 남녀처럼 오랫동안 홍콩의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때는 영국에 기대 살았고, 또 앞으로는 중국에 기대고 살아야 하지만 궁극으로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파편화 되고 고립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담겨져 있다.

 

첸 여사는 결국 남편과 재결합한 듯이 나오며 아이까지 낳는다. 차오는 제3세계 급인 싱가폴로 떠난다. 여자는 남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데려가지 못한다. 둘은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배신하는 셈이다.

 

이 영화의 또 한 가지 정치적 키워드는 2046이라는 숫자다.

 

2046년은 중국과 홍콩이 합의한 일국양제가 끝나는 해이다. 영화에서 신문기자인 차오는 (거리의 시위와 소요사태를 취재하기 보다는) 무협지를 쓰는 일에 매달린다. 그는 이 소설을 첸과 같이 쓰는데 그 작업을 하는 공간이 한 호텔의 2046호이다.

 

그런데 둘은 이 룸에서 섹스를 했는지, 안했는지가 불분명하다. 둘은 결합도 아니고 분리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2046호에서의 밀회를 즐기지만 그건 그 안에서 일이다. 게다가 무협지를 쓰는 일로만 즐거울 뿐이다.

 

둘의 모습처럼 2046년이 지나면(2046호를 나가면) 홍콩과 중국의 밀애는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무협지를 같이 쓰지’ 않을 것이다. 둘은 첸과 차오처럼 갈라설 것이다.

 

‘화양연화’를 정치적으로 읽어 내는 것은 무상(無常)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결코 체제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 모든 것도 결국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한 일이다. 저쪽과 이쪽 모두 똑같은 자들이 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왕가위는 두 남녀의 사랑이 실패했음을 슬퍼한다. 첸과 차오의 사랑은 이뤄졌어야 했다고 그는 말한다. 사랑이 세상의 진보를 방해하는 적은 없다. 세상이 사랑을 가로막을 뿐이다. 그건 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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