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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연(蓮)

 

 

 

연꽃은 나흘만 핀다. 피는데 하루, 지는데 하루, 활짝 핀 연꽃이 세상과 만나는 시간은 이틀뿐이다. 개중에는 하루만 피는 연꽃도 있다. 새벽처럼 꽃잎을 열어서, 아침이면 활짝 피었다가, 해가 기울기도 전에 꽃잎을 닫는다. 노랑어리연꽃이 그렇다. 그래서일까. 연꽃은 사는 곳을 가리지 않는다. 진창이든 흙탕이든 기꺼이 뿌리를 내린다. 뿌리 내린 연꽃은 혼탁함에 물들지 않고 주변을 정화한다. 어둠을 밀어내고 빛으로 피어나는 꽃 그것이 연꽃이다.

 

여기, 연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별을 보며 하루를 열었다가 달을 등지고 하루를 닫는 사람들이 있다. 병원이든 대학이든 지하철이든 어디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당연히 피는 꽃이 있다. 백화점이든 지하상가든 공공기관이든 어디든, 사람이 꼬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이 있다. 먹고 마시고 쓰고 버려지는 아수라장에서 멸시와 천대를 쓸어 담아 세상을 정화하는 연꽃들이 있다. 우리는 그 연꽃을 ‘청소노동자’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참 우습다. 흙탕물에 핀 연꽃은 거룩하다고 하면서, 세상을 정화하는 연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흙탕물에 핀 연꽃은 차로 우려 마시면서, 수술실에서 나온 피와 고름을 치우는 사람들은 더럽다고 한다. 흙탕물에 핀 연꽃 이파리에는 밥을 싸 먹으면서, 공중화장실의 변기를 청소하는 사람들은 냄새난다고 한다. 더럽고 냄새나는 것은, 똥과 오줌을 싸고 지리는 사람일까, 대신해서 닦고 치워주는 사람일까.

 

연못에 핀 연꽃은 영롱하지만 세상에 핀 연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흙탕물 바닥에 뿌리내린 연꽃처럼 청소노동자들은 도시의 가장 어두운 곳에 뿌리를 내린다. 중환자실 옆 계단 밑에 커튼을 치고 들어앉았거나, 화장실 비품창고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앉아서, 쉬고 먹고 옷을 갈아입는다. 승객용 대신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되고, 큰 손님이라도 방문할 때는 죽은 듯이 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청소노동자는 투명인간이다.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 가운데 열에 여덟은 여성 청소노동자다. 그들 가운데 일곱은 비정규직이고 평균 월급은 117만원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내이고 엄마인 그들이 도시가 싸지른 쓰레기를 치운다. 남자화장실 소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지린내 나는 변기를 손으로 닦는다. 힐끔거리며 바지 지퍼를 내리는 사내들 틈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청소를 한다. 지하철역에서 버스터미널에서, 남자화장실이 있는 온갖 빌딩에서, 수치와 치욕을 삼키며 변기를 닦는다.

 

연꽃은 나흘만 핀다. 피는데 하루, 지는데 하루, 활짝 핀 연꽃이 세상과 만나는 시간은 이틀뿐이다. 청소노동자들의 목숨도 다르지 않다. 최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갑질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노조를 결성한 게 해고 사유였다. 건물에서 쫓겨날 때, 관리자들은 “늙은 년들이 노조는 무슨”,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며 밀어냈다. 참으로 무식한 말이다. 그녀들은 이년, 저년이 아니라 LG트윈타워를 정화(淨化)시켜온 거룩한 연(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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