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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변방의 장수 홍범도의 3대 철칙

 

 

홍범도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다.

 

1868년 평양의 서문 밖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머슴, 군인, 종이공장 노동자, 승려, 포수, 의병, 광산 노동자, 독립군, 농부, 부두 노동자, 혁명가의 삶을 살았고 마지막 직업은 극장 수위였다.

 

그가 한 일은 수없이 많지만 한 단어로 그를 규정해야 한다면 독립군일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래, 그보다 더 많이 일본군과 싸우고 그보다 더 크게 일본군을 이긴 사람은 없었다. 27세에 강원도 단발령에서 황해도 출신의 동지 김수협과 함께 일본군 12명을 처단한 이래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52세까지 그는 싸우고 또 싸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가족 모두를 잃었다. 아내는 일제의 고문으로 죽고, 큰아들 양순은 그와 함께 일본군과 싸우다 열일곱 살 나이에 전사했다. 작은아들 용환은 그와 함께 만주를 유랑하다 병으로 죽었다. 핏줄 하나 남기지 못하고 머나먼 중앙아시아에서 극장 수위로 생을 마감한 그의 유해조차 아직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필자가 그를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위대한 업적을 재평가하자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비운에 찬 한 영웅의 생애를 제대로 기리자는 것도 아니다. 그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개척해나가야 할 미래를 밝혀주는 좌표이기 때문이다.

 

홍범도는 봉건왕조 말기의 계급사회에서 최하층민으로 태어나 가난과 억압, 차별을 온몸으로 견디며 돌파한 변방의 장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포수의 신분으로 유인석의병대의 선봉장을 맡았던 김백선은 양반인 동료지휘관에게 포살당했다. 1907년 고종의 밀지를 받은 이인영이 결성한 13도 창의군에서 홍범도와 신돌석은 제외되었다. 그들은 막강한 전력으로 가장 잘 싸웠지만 양반이 아니었다. 왜놈에게 빼앗긴 주권을 되찾자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망한 나라의 주류는 비주류를 견제하고 비토했다. 일본군 정규군과 전면전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로 항일무장투쟁사에 기록되는 봉오동 전투의 위업은 반세기 넘게 평가받지 못했다. 그가 이끌던 대한독립군이 신민단과 한민회 등과 연합해서 승리한 청산리대첩의 공적을 김좌진과 이범석의 전유물처럼 곡해한 것도 그를 비토한 양반 출신들이었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각 분야에서 당하는 견제와 비토가 홍범도가 당했던 견제와 비토보다 약해졌을까?

 

부디 기득권세력에 도전하는 변방의 장수들이 견제와 비토를 이겨내고 미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홍범도는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며 미래와 싸웠다. 변방의 장수였던 홍범도가 지금도 우리의 미래인 이유는 그가 독립군을 지휘하며 철칙으로 삼았던 다음 세 가지 원칙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첫째, 잘못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오직 그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만이 잘못된 사람이다.

둘째, 남의 말만 듣고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 남을 나쁘게 말하는 자가 정말 나쁜 자인 경우가 더 많다.

셋째, 강한 자에게 비굴하지 말고 약한 자를 항상 도와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