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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22 - 지붕 밑의 한낮, 보고 싶은 사람

 “나는 어렸을 때 인천에서 살았다. 집 앞에는 창영국민학교가 있었는데, 학교의 울타리는 철조망이었다.”

 

“지붕 위에서는 시가지가 구석구석 잡혔다. 오른쪽으로는 측후소가 우뚝 선 오정포 산, 그 옆은 만국공원, 만국공원 속에는 평화각, 또 그 옆으로는 뾰족 성당, 저 멀리 황골고개 너머 공설운동장, 그리고 바로 눈 앞이다 싶게 상인천역(지금의 동인천역)의 지붕, 역 좌우로는 배다리와 철다리...(중략)...구름다리 저 건너 괭이부리 쪽으로 는 바다가 쪽박 우물만큼 고여 있었다.”

 

“수도국산과 오리나무산으로 이어진 광철이네 대문 앞으로 뻗어오른 그 길은 이뿐이네 집과 장님네 집에서 네거리로 갈라졌다. 그 중에서 송현동 쪽의 한모서리가 이뿐이네 이발소였고 맞은편 송림동 쪽 모서리는 육형제네 토담집, 송현동 쪽으로...”

 

이런 소설이 정말 있을까 싶다. 두 편의 소설, 인천의 동구를 잘 표현한 소설 세상에 없지 싶다. ‘지붕 밑의 한낮’, ‘강 건너 저쪽에서’ 등이다.

한남철! 그는 누구인가. 인천이 낳은 진정한 소설가라 부르고 싶은 이름이다. 1937년 인천(강화)에서 태어나 창영동에서 유년기를(창영초교 졸업) 보내고 인천중학교와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 진학한 재원으로 인천이 자랑해야 할 문인이다.

 

그의 소설 중 유독 동구가 잘 그려져 있는 이유는 유년기에서 청년기를 동구에서 보낸 이유가 크겠지만 출생년에서 보듯 가장 수난의 세월을 몸으로 겪은 나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개항 후 급변하는 근·현대의 인천 모습을 어느 나이보다도 관심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는 감수가 예민한 세대가 소설가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의 소설 중 유작이며 작가 자신의 인생역정을 겪게 한 강화도의 서민 생활을 심도 있게 묘사한 ‘강 건너 저쪽에서’는 창영동, 유년시절의 묘사는 정말 인천적 소설로서 유언과도 같은 작품이다. 집필 중 한남철이란 필명을 벗고 한남규(본명)로 돌아간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은 것이다.

 

분명 우리가 부르고 있는 우각리 풍광이 살아있는 그의 소설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자.

 

“배다리에서 창영동으로 꺾어드는 길목에서 사탕을 붕어 모양의 생철도장으로 찍어 그것을 고대로 따내면 값을 않 내도 되는 오마께 장사가 생업이었다.” 그렇다. 50~60년대 어느 곳이든 초등학교가 있던 길목에서는 이렇게 오마께 (뽑기놀이) 장사가 한 둘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배다리에서 창영동으로 꺾어 드는 길목이라면 지금 헌책방 골목길에서 양조장이 있던 길쯤으로 눈감고 더듬어도 우각리 초입이 아닌가. 그는 이 소설을 얻기 위해 우각리 길을 얼마나 오르내리며 탐닉했을까. 필시 작가 정신이 투철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한남철이다.

 

1958년 사상계에서 ‘실의’로 문단에 나와 창작과 비평지가 나오던 1966년부터 왕성한 집필활동을 시작한 그는 ‘검은 파도’, ‘연기’, ‘앵두나무 집’ 등 주옥같은 단편을 세상에 내어놓으며 섬세함의 극치를 달린 소설가로서 칭송이 자자했었다.

 

창작과 비평의 창간 주역이며 자유실천문인협회(작가회의 전신, 1974년)를 창립한 문단의 중추적 인물이기도 했다. ‘없이 살기로 비굴한 처신까지 한다면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그의 지론이 따뜻한 인간애로 승화되는 총명강기 한남철은 글 속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다.

 

1967년 분례기를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는 방영웅의 단편 ‘살아가는 이야기’의 서평을 보면(1974년 창비 가을호) “오늘의 우리 문학이 민중의 인간 회복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하는 문제가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이다. 민중의 문학이 방씨 소설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이야기 재미’가 없어도 안 되는 동시에 ‘재미’가 결코 문인 개인의 호구지책의 수단이나 일부 유한층의 노리개나 명예를 위한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혹평을 했었다. 지금도 교훈처럼 살아있는 목소리는 오늘날 문단과 작가들의 행태를 잘 반영한 충고이기도 하다.

 

소설가이며 방송작가, 대학교수인 부인 이순(二筍)의 뇌막염, 그의 간경화로 고생을 해도 극진히 부인을 간호했던 생활인 한남규는 1993년 아내보다 먼저 56세의 일기로 강 건너 저편으로 갔다.

14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이자 그의 대표작 집 ‘바닷가 소년’이 저승에 다다르기 1년 전 발간되었다.

 

강 건너 저쪽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 그리운 사람./ 김학균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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