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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피서는 다녀왔는지요

 

일엽지추(一葉知秋)라고 잎사귀 하나가 가을을 알아차리게 한다고 했다. 나뭇잎 하나에서 자연의 영혼을 읽어내던 선조들 정신을 우러러 생각하게 된다. 처서 무렵이었다. 선풍기를 껴안고 잠들다시피 했던 금년 여름밤은 기온이 내려갈 줄 몰랐다. 자다가 일어나 불을 켜고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시를 메모했다. ‘선풍기 앞에서/ 나는 생각해 봅니다./ 고향집 앞 시냇물에서/ 아버지와 함께 목욕하던 때를/ 나의 행복은 철없이 지내던/ 그 시절 속에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뒤/ 나는 슬픔으로 배불렀습니다.’ 금년 여름밤은 하룻밤 보내기가 일 년보다 더 지루한 것 같았다.

 

그런데 불타는 하늘 아래에서도 계절의 운행은 변함없는지 새벽이면 바람이 선선하다는 느낌과 함께 냉기 머금은 공기가 살갗에 와닿았다. 처서라고 절기의 이름값을 하는 것인지 살맛 돋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역시 우주라는 자연 속 가냘픈 생명인가 싶으면서도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앉아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기행》을 읽었다. 그분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일주일 모자라는 일 년 만에 석방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라서 그는 출판사(삼민사) 일을 계속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1983년 8년 만에 복권되어 변호사로 복귀했다면서, 한 번도 어려운 변호사를 두 번이나 되었으니 기록적이라고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 뒤 그분 교회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한 변호사님이 복권이 되었다고 하면서 기쁘다’고 했다. 그러자 한 여자 교인이 ‘예, 복권이요? 얼마짜리 복권인데요?’라고 물어서 폭소가 터졌다고도 했다. 살며 이만한 재미도 드물 것이다.

 

고향의 초등학교에서 교사로서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내 학급에서 코 흘리며 공부하던 학생이 지금은 공직에서 정년을 하고 있다. 그중 강성이라는 옛 학생은 지난 5월 마지막 주에 딸의 결혼식이 있었다. 코로나로 결혼식을 마치고 다음에 만났다. 나는 그에게 《사랑만이 남는다》라는 나태주의 시집을 주면서 신부인 딸에게 전해주도록 했다. 시집 제목처럼 사랑만을 생각하며 사랑으로 성공한 후배 세대이길 비는 마음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산문을 보면 시인이 학교 다닐 때 만난 국어 선생님 소개가 나온다. 그 선생님은 정년 퇴임한 뒤 26년 동안 혼자서 공부하여 사서삼경을 완역해 주해서를 출간하였다고 한다. 뒤이어 그 선생님이 대문 밖 도로를 쓰는 것을 보고 쓴 시인의 시가 나온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한가히 속 편하게 시를 이야기할 때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적인 문화와 잘못된 환경의식 그리고 대책 없는 기술자본주의의 막가파 정신으로 인한 기후변화와 전염병 속에서 차분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모든 자연 속의 생태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 집 앞 도로라도 쓸고, 우주의 자연 질서를 존중하며 후손들 미래에 더 이상 죄짓지 말자는 것이다. 이 땅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제 멋에 겨워 알게 모르게 자연에 지은 죄 값으로 기후변화와 코로나 19라는 벌은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겸허히 성찰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자연재해와 질병으로부터 한승헌 변호사처럼 복권되기를 소망해본다. 그래야 ‘피서는 잘 다녀왔느냐?’고 인사하며 지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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