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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명(命)

 

 

 

막내가 왔다. 현관문이 삑삑거리기 시작한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캐리어 가득 빨래를 챙겨 온 막내는 씻기도 전에 ‘배고파’를 연발했다. 삼분이나 걸렸을까. 초스피드로 씻고 털고 말린 막내는 팬티 바람에 식탁에 앉았다. 자다가 불려 나온 막내의 엄마는, 그러니까 내게 주인 되는 분께서는, “미친 놈, 시간이 몇 신데”를 연발하면서 밥상을 차렸다.

 

막내는 양푼에 밥을 비벼가며 냉장고 잔반을 처리했다. 고추장 냄새는 알싸하고 들기름 냄새는 달달했다. 아내는 맞은편 식탁에 앉아 꾸벅 졸았다. ‘꾸벅’과 ‘꿀꺽’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상봉하였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사회적 거리두기와 상관없이) 모자의 상봉을 관전했다. 다행히 막내의 엄마는, 그러니까 내게 주인 되는 분께서는, 별다른 지시를 내게 하명하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의 청춘은 애달프다. 대학생이라고 해도 별 수 없다. 비대면(非對面)이 일상인 캠퍼스에 낭만은 없다. 없는 낭만이 꿈꾼다고 생겨날까. 보이는 것이라곤 불확실뿐인 시대에 낭만에게 할애할 여유는 없다. 막내는 학교 담 너머에서 자취를 한다. 비대면 수업이 일상이라지만 교수연구실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막내에겐 ‘해당사항 없음’이다. 싫든 좋든, 해가 뜨면 막내는 학교로 출근을 한다.

 

새벽이 되도록 막내는 노트북 앞을 떠나지 않았다. 과제를 하는 모양이었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눈길이 마주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낼만해?” 묻자, 막내는 대답 대신 슬쩍 웃어 보였다. 막내의 웃음 앞에만 서면 왜 코끝이 간지러울까. 교수연구실에는 막내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다고 했다. 막내 표현대로라면, ‘박사 형’과 ‘석사 형’이 그들이다.

 

아마도, 박사 과정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선배들이겠지. 막내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세상살이’를 배운다고 했다. 스물두 살, 예비 사회인이 배우는 세상살이는 어떤 것일까. 막내의 생각을 따라 걷다 보니 혓바닥 너머로 쓴 물이 고였다. 그래,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가면 된다. 특별할 것도 별다를 것도 없다. 부끄럽지만, 이 아비는 지금도 ‘어른 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나란히 스탠드 불빛에 기대 밤을 지새웠다. 막내의 불빛은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꺼졌다. 뜻대로 원고지를 채우지 못한 나는 밤새 머리카락만 쥐어뜯었다. 아침을 깨운 건 밤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딸아이의 푸념이었다. 간호사와 작가, 둘 중에 무엇이 더 피를 말리는 직업일까. 딸아이 방 침대를 점거했던 막내는 제 누이에게 등짝을 맞고서야 기어 나왔다.

 

일요일 아침, 졸린 눈을 한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누군가에게는 아침이고, 누군가에게는 저녁인 식사자리였다. 가장 먼저 털고 일어난 사람은 아내였다. 아내는 일요일인데도 학교로 출근했다. 토익(TOEIC) 시험감독, 네 시간에 팔만 원이라고 했다. 현관을 나서기 전에 아내는, 그러니까 내게 주인 되는 분께서는,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빨래를 널어놓으라는 지시를 내게 하명하셨다.

 

하명하실 때, 잘 털어서 널라는 말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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