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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 (난독일기)] 소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건 사슴이다. 소는, 모가지와 상관없이 슬픈 짐승이다. 소의 운명은 ‘워낭소리’와 함께 끝났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만큼이나, 소의 역할 또한 우리 곁에서 지워지고 없다. 들녘에서 논을 갈고 밭을 일구는 건 소가 아니라 기계다. 일터에서 쫓겨난 것은 사람이나 소나 마찬가지이지만, 소에게까지 실업수당이 지급되진 않는다. 고양이처럼 발바닥을 핥지 못하고,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지 못해서, 소는 반려동물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소는, 모가지와 상관없이 슬픈 짐승이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듯이 사람은 소를 키운다. 개와 고양이는 주린 정을 채우기 위해서 키우고 소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키운다. 사람은 소를 먹는다. 사람이 고기로 먹는 소는 한해 삼억 마리에 달한다. 고기는 구워 먹거나 삶아 먹거나 날것으로 먹는다. 머리는 쪄서 귀와 코와 혀와 골을 먹고, 뼈는 푹 고아 물을 먹는다. 그렇게 먹다 남긴 것을 갈아서 사람은 일반가축의 먹이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 중에는 반려동물의 먹이도 있다. 사람이 먹기 위해 죽인 가축의 부산물을 가축이 다시 먹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사료라고 부른다.

 

개중에는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키우는 소도 있다. 젖소의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 갈린다. 젖을 짤 수 없는 수컷은 생식기능을 끊어버리고 고기소로 키운다. 우리가 아는 젖소는 모두가 암컷이다. 물론 암컷 젖소라고 무턱대고 젖을 짤 순 없다. 젖은, 새끼를 배거나 낳은 소에게서만 나온다. 사람들은 젖을 짜기 위해 끝없이 젖소를 임신(姙娠)시킨다. 그런 점에서, 젖소의 임신은 사람에 의한 강제 임신이고 평생 임신이다. 그렇게 짜낸 젖소의 젖으로 사람들은 우유와 치즈와 버터와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는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건 사슴이다. 소는, 모가지와 상관없이 슬픈 짐승이다. 논과 밭에서 일을 하다가 사람과 함께 늙어 죽는 건 조선왕조실록에나 나오는 이야기이다. 소는 스무 살까지 살 수 있지만 ‘가축’이 된 소는 평균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 현대사회에서 소의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평균수명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은, 소의 육질이 가장 연하거나, 피둥피둥 살이 올랐거나, 새끼를 낳지 못하거나, 젖이 나오지 않을 때 소를 죽인다. 그렇게 죽은 소들의 나이는 두 살이나 세 살이 대부분이고 젖소라 해도 여섯 살을 넘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소를 닮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터에서 쫓겨나는 건 소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소와 사람을 밀어내고 일을 하는 건 기계와 인공지능이다. 기계와 인공지능은 근로기준법의 대상이 아니다. 스물네 시간 일을 시켜도 문제없고, 고장이 나도 내다 버리면 그뿐이다. 사람이 만든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정작 사람이 일로부터 소외되는 세상이다. 일이 곧 밥이고 생명인 세상에서, 일터에서 쫓겨난 일꾼들의 눈은 슬프다. 소를 닮은 눈은 슬프다. 소를 닮은 사람들은, 모가지와 상관없이 서글픈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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