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수)

  • 흐림동두천 10.5℃
  • 흐림강릉 12.5℃
  • 서울 11.6℃
  • 대전 14.5℃
  • 구름조금대구 27.4℃
  • 맑음울산 25.5℃
  • 흐림광주 14.4℃
  • 맑음부산 22.9℃
  • 흐림고창 11.6℃
  • 흐림제주 17.0℃
  • 흐림강화 11.0℃
  • 흐림보은 15.8℃
  • 흐림금산 17.9℃
  • 구름많음강진군 16.7℃
  • 맑음경주시 22.2℃
  • 맑음거제 21.7℃
기상청 제공

[김동민의 아르케] 문학적 상상력의 비결

인문학의 위기(4)

 

 

 

문학의 연구대상은 문학 작품이다. 문학 작품의 장점은, 학문세계에서는 금기인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의 세계건 역사적 사건이건 학자들은 하지 못하는 상상력을 발휘해 픽션의 형식으로 보이지 않는 진실을 추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상상력은 무기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맹랑한 얘기로 역사와 현실을 오독하게 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다.

 

학문에서도 상상력은 필요하다. 다만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학 작품과 구별될 뿐이다. 아인슈타인이 빛과 같은 속도로 이동한다는 상상을 하면서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지식과 이론은 많은 경우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했다. 아인슈타인이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했다는 말도 상기하자.

 

상상력의 원천은 다양한 분야의 공부다. 시쳇말로 하면 지식의 융합이다. 한 분야에만 집착하는 전문주의에서는 발휘되기 어렵다. 우물을 팔 때도 넓게 시작해서 깊이 파 들어가는 법이다. 그래야 같은 전문가라도 융합형 전문가가 될 수 있다. 21세기가 요구한 지식인의 전형이다. 최명희의 『혼불』에는 “이 온 세상 삼라만상과 우주 공간의 음 가운데 무엇보다 음이어서 태음이라 하는 달”에 대해 이런 얘기가 있다.

 

“사람의 눈이 무엇이리오. 그 눈에 보이면 있다 하고, 안 보이면 없다 하지만, 푸른 달빛의 눈썹 끝도 비치지 않는 어둠이 먹통보다 짙고 검은 밤, 달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지하에서 저 홀로 만월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달이 지상으로 오르며 찼다 이울었다 하는 변화에 맞추어 땅이 전신을 다하여 호응하는 것처럼, 땅에 사는 인간 또한 이 결을 따라 호흡하며 살아간다.”(5권 158~159쪽)

 

앞서 이런 얘기도 했다. “보이는 것에 연연하여 보이지 않는 것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오히려 형식에 본질이 희생을 당하는 것이리라.”(2권 66쪽) 존재와 비존재, 본질과 현상, 즉 존재론 철학이다. 존재론은 관념론이지만, 불멸의 실체를 인식하는데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혼불』은 조선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본질을 추적한다.

 

음력 29일과 30일, 1일, 2일은 달이 보이지 않는다. 어둠이 먹통보다 짙고 검은 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지하에서 저 홀로 만월을 이루고 있는 기간이다. 달은 3일이 되어야 해질 무렵 서쪽 하늘에 잠시 모습을 보여준다. 눈썹 모양의 초승달이다. 달은 우리가 보지 않아도 45억년을 한결같은 운동을 하고 있다(물론 미세한 변화는 있다).

 

그러나 보지 않고 인식하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빚어내는 것이다. 지하에 묻힌 온달이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초승달과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의 순서를 반복하는 한 달 동안의 변화는 우리가 잘 안다.

오늘 보름달이 떴겠구나 하는 인식과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것은 다르다. 감각이 다른 것이다. 『혼불』의 이 대목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느끼도록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대목도 있다.

 

“상사(相思)가 되면 비장이 마른다. 말하기 쉬워서, 사람이 그립다고 죽기까지 하랴, 하지마는 ‘상사’라는 말이 ‘생각을 한다’는 것이니, 그 ‘생각’이 깊으면 비장이 상하고, 비장이 마르게 상하면 조혈을 제대로 못하는지라 피가 마른다. 피가 마르니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이다.”(6권 288쪽)

 

강실이가 사촌오빠 강모를 사모하는 마음이 지나쳐 건강을 해친 상황에 대한 묘사다. 마음은 소위 자유의지로 통제되지 않는다. 비장과 위를 묶어 비위라고도 하는데, 흔히 마땅치 않은 꼴을 당하면 비위가 상해 밥을 못 먹겠다고 하는 그 비장이다. 비장이 상하면 피를 거르지 못해 잠을 못 자고 밥맛이 떨어져 몸이 심각하게 상하게 된다. 마음의 병이다.

 

문학 작품을 구상할 때,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플롯의 구상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협소하게 될 것이다. 상사병과 같은 마음의 병이 비장과 관련되어 있다는 지식도 마찬가지다. 최명희 작가는 역사, 전통문화, 자연과학, 수목, 원예 등 다방면의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살아있다면 『혼불』도 완성하고 더 많은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을 것이다. 강실이와 춘복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편, 문제는 학문으로서의 문학도 문학 작품처럼 다양한 지식의 융합이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그건 각자 알아서 하는 건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최명희 작가도 개인적으로 알아서 공부한 건가?

 

학문으로서의 문학도 ‘보이지 않는 것의 이치’를 깨달아 명작(名作)의 수준에 맞게 도약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인문학의 위기’ 담론은 오래전 추억이고, 인문학이 존재의 근거마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서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