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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잘하지 못해도 가르칠 수 있다

 

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하고 놀란 점은 아이들이 생각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는 사실이었다. 첫 미술 수업 때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걸 보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에게 이미 선생님이 그림을 얼마나 못 그리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약간의 부담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반 아이들의 대다수가 잘 그린다면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리는 방법과 순서를 정확히 알려준다면 아이들이 찰떡처럼 완성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가진 주지 교과 관련 지식이나 체육, 음악의 실기 기능은 교사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 임용고시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이를 보장한다. 다만 미술 실기만큼은 도무지 자신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초, 중, 고, 대학 내내 미술 실기에서 낙제점을 겨우 면한 상태로 졸업했다. 사실 낙제인 적도 있었을 거다.

 

초등학교 때는 찰흙으로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 제출했는데 찰흙에 장난을 쳤다고 선생님이 혼내셨다. 중학교 때는 미술 선생님이 내 수묵화를 친히 찢어버리시고는 본인이 직접 그려서 하사하셨다. 고등학교 때는 미술이 선택과목이라 빼버렸고, 대학에서는 몇 시간 내내 그린 풍경화를 보고 교수님께서 “나무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어야 했다.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면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만드는 일에 경기 일으키는 수준까지 온다. 하지만, 초등교사는 모든 걸 가르쳐야 하고 미술이 예외일 수는 없다.

 

보통 실기 기능을 설명할 때 교사가 직접 시범을 보이고 아이들에게 동작을 따라 하게 시킨다. 체육 축구에서 패스를 설명한다면 교사와 한 명의 도우미가 서로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발목의 각도는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발 안 축의 중앙에 공이 와야 한다든지 등을 설명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먼저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이 음을 듣고 따라 부르고, 리코더를 먼저 불면 손동작을 그대로 복사해서 따라 한다.

 

미술 실기 시간에는 직접 시범을 보이는 대신에 자료를 보여주고 말로 설명하는 걸 택했다. 만들 거나 그리는 단계를 세분화해서 자세히 사진으로 보여주고 확인하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정지된 사진이 부족하게 느껴지면 동영상 자료를 이용해서 그림을 완성한다. 최근에는 동영상을 활용해서 수채화 수업을 했다. 적절한 자료에 아이들의 실력을 결합하니 꽤 그럴싸한 수채화 작품들이 나왔다. 교사의 실기 능력이 부족해도 적절한 자료를 제공해서 성취 목표에 도달했다.

 

전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초등교사는 그야말로 만능이어야 한다. 아주 깊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아이들이 보기에 괜찮은 기능을 가져야 한다. 한때는 미술 실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지금은 다르다. 모든 걸 직접 시범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고 나니까 잘하지 못해도 가르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잘 모르는 새로운 뭔가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닥쳐와도 부딪혀 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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