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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의 광고로 세상읽기] ④ 전쟁과 여성, 그리고 리벳공 로지

 

 

실업자가 넘쳐났던 경제 대공황 시기,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산업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노동은 남성의 것”이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를 공고화시키는 도구였지요. 하지만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상황이 급변합니다.

 

독일의 경우 “여성의 본분은 아이와 부엌과 교회에 있다”는 나치즘 이데올로기 탓에 여성 노동력 차출이 상대적으로 저조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 모든 참전국에서는 대대적 여성노동력 동원이 실행됩니다. 미국이 대표적이었지요.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1년 만에 18세에서 39세 사이 수백만 명의 남성들이 전쟁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연히 산업 전반에 걸쳐 극심한 노동력 부족이 발생했고, 이것이 여성노동의 불가피한 확대를 요구한 겁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가부장적 편견에 순응하여 집안에 머물러 있던 여성들을 산업 현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광고와 프로파간다 캠페인이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여성의 노동 참여를 애국시민의 미덕으로 칭송하는 대대적 캠페인을 펼친 거지요. 노동하는 여성에 대한 긍정적 이데올로기가 전 방위적으로 유포된 겁니다.

 

이에 따라 여성노동 특히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는 여성의 비율이 급속히 늘어납니다. 이 같은 노동구조의 변화는 당대 미국의 성역할 관념에 변화를 초래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며, 여성의 사회 진출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쟁 시기 여성노동력의 급속한 유입이 기존의 성역할 모델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상징하는 것이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ter)> 사례입니다. 리벳공이란 건설 현장 등에서 철골(鐵骨) 접합용 리벳 해머를 쓰는 노동자를 말합니다. 가장 위험한 환경에서 가장 엄혹한 육체노동을 하는 존재인 게지요.

 

아래에 ‘리벳공 로지’가 나와 있습니다(그림 1). 광고대행사 JWT에서 1942년 제작한 포스터입니다. 하워드 밀러(Howard Miller)가 그린 일러스트 속의 주인공은 붉은 물방울무늬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푸른색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문제는 그녀의 이미지가 전통적인 여성상과 완전히 달랐다는 점입니다. 남성 못지않은 이두박근을 불끈 내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거지요. 작품의 의미는 분명했습니다. 여성은 강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남정네들이 하는 중노동도 너끈히 감당해 낸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전설적 포스터의 탄생은 1942년 미시간주 앤 하버 인근의 강철압연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18세 제럴딘 도일(Geraldine Doyle)의 사진이 <랜싱 스테이트 저널>지에 실린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그림 2). 그녀의 모습은 “우린 할 수 있어요!(We can do it!)”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게재되었지요. 그런데 이 사진이 전국지인 <세터데이이브닝포스트>에 전재되면서 폭발적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 여파가 다른 여러 매체의 표지, 포스터, 광고로 확산된 겁니다.

 

 

 

 

 

같은 해 레드 에반스(Redd Evans)와 존 제이콥 로에브(John Jacob Loeb)가 만든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라는 팝송 싱글 음반(그림 3)이 파라마운트 뮤직에서 출시됩니다. 이 노래 또한 대히트를 치게 되고 ‘로지’를 당대의 심벌로 부상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음반 표지에는 전투기 제조 공장에서 즐겁게 리벳을 박고 있는 로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지요. 노래 가사는 이랬습니다.

 

“날이 화창하든 비가 오든 그녀는 늘 조립라인에 있지. 승리를 위해 일하는 거야. 역사를 만드는 거지. 이 연약한 사람은 남자들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어. 리벳공 로지. 그녀의 남자친구 찰리는 해병이야. (근데) 로지가 찰리를 지켜줘. 리벳으로 무기를 조이면서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전쟁 기간 내내 리벳공 로지는 다양한 언론보도, 프로파간다, 광고로 변형되어 여성노동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전환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림 4>의 광고에는 포탄을 만드는 군수산업 노동자(WOW : War Ordnance Worker) 로지가 등장합니다. 화면 우측에 적십자 요원과 종군간호사 등을 상징하는 모자가 세로로 쭉 배열되어있는데, 맨 위에 로지의 물방울무늬 스카프가 놓여있습니다. “그녀는 멋지다(She is WOW)”라는 중의적 헤드라인을 보세요. 승전(勝戰)을 위해 험한 일 감당하는 군수산업 여성노동자들이 그중 최고라는 뜻입니다.

 

 

로지의 원래 모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설이 분분합니다. 예를 들어 <뉴욕 선(New York Sun)> 신문은 1943년 6월 8일 자 기사에서, 제너럴모터스 산하 이스턴항공기 회사 노동자 로지나 힉키(Rosina Hickey)와 동료들이 험한 리벳 작업하는 장면을 보도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이 원조 리벳공 로지라고 주장했지요.

 

하지만 중요한 건 원본(原本)이 누구냐가 아니었습니다. ‘리벳공 로지’가 차지하는 역사적 함의였습니다. 그녀야말로 가혹한 육체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애국적 여성노동자를 상징하는 아이콘(icon)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에 설득되어 인종과 나이를 불문한 수많은 여성들이 용기 있게 (과거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중공업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던 겁니다.

 

리벳공 로지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지배적 남성성을 대체하거나 혹은 보완하는 젠더적 상징으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수 십 년 동안 오리지널 포스터를 패러디한 작품이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나타난 이유가 그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그림 5>는 미국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 진영이 2008년 재선 캠페인에서 사용한 포스터입니다. 모델은 버락의 아내 미셀 오바마(Michelle Obama)였고요.

 

좌우를 반전시켰고, 얼굴만 바꿨을 뿐 원작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We can Do it!”이란 헤드라인까지 당시 오바마 진영의 핵심 슬로건인 “Yes, We Can!”으로 살짝 바꾸었군요. 리벳공 로지는 탄생한 지 8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원작의 에너지가 세월의 무게를 뚫고 아직까지도 생생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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