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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위대한 포퓰리즘, 그 반(反)독점의 정치”

 

포퓰리즘, 그 진실은?

 

정치에서 “포퓰리즘(populism)”은 비하(卑下)의 언어다. 이 말은 가치나 원칙없이 대중들의 욕망에 영합해서 표를 모으는 행위를 지탄할 때 등장한다. 그렇게 인기에만 기대는 정치인은 “포퓰리스트(populist)”라는 공격을 받는다. 사실이 아니라도 정적(政敵)을 모함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대마다 같은 단어라도 그 의미가 달라지긴 하나, 사실 “포퓰리즘”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이다. 이 단어는 “피플(people)”에서 나온 것이자 미국의 내전(Civil War)인 남북전쟁 당시인 1863년 에이브라함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행한 연설로 더욱 분명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민주정치의 주체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데 ‘people’은 ‘국민(the nation)’이 아니라 ‘인민(人民)’이다.

 

 

링컨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와 일치한다. 이 인민을 앞세우는 사상과 태도가 “포퓰리즘”이다. 그 정확한 번역은 “인민주의”가 되는데 19세기 말 미국의 역사에서 출현한 “인민당(People’s Party/Populist Party)”이 바로 그 실체다.

 

그런데 “인민”이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서 분단체제에 따른 이데올로기적 공격에 시달려 일상에서 쓰기 어렵게 되어버렸듯이, 미국에서 “포퓰리즘” 역시도 여러 형태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지금과 같이 애초의 뜻과는 전혀 달리 ‘인기몰이식 정치’를 일컫는 것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결과 자신의 정치에 “포퓰리스트”라는 수식을 하는 경우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농민과 노동자들의 연합을 통해 일군 “인민주의 정치의 전통”을 이들과 대적했던 대자본 그리고 이들의 이해를 대변한 기성정치가 이렇게 왜곡하고 말살시켜버린 것이다. 언론을 소유한 독점자본이 행한 “인민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정치(progressive politics) 죽이기”의 결과였다. <인민당>의 기본 가치는 “반독점(anti-monopoly/anti-trust)”이었기 때문이었다.

 

링컨의 우려와 그 현실

 

이미 전쟁의 과정에서 J.P. 모건과 같은 대자본의 등장이 미국 정치와 경제를 좌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남부는 북부의 자본주의 체제로 통합되어간다. 내세운 것은 노예해방이었지만 보다 중요한 결과는 대자본의 독점체제가 형성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링컨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자신의 지인에게 보내 미국의 장래를 염려한다.

 

 

“나는 가까운 장래에 이 나라의 안전을 위협할 우려스러운 위기가 올 거라 보네. 이번 내전의 결과로 기업들이 정치의 중심을 장악하게 될 것이며 지배층 내부에 부패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오. 돈의 힘이 모든 걸 쥐게 될 것이며 모든 부는 소수의 손에 장악되고 결국 민주 공화정은 파괴되지 않을까 무척 걱정이 된다네. 신께서 내 이런 예상이 틀리다는 것을 보여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종료된 이후 동과 서를 연결하는 철도건설이 가장 중요한 국가적 사업이 되고 이 과정에서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 대자본은 미국 자본주의의 독점구조를 견고하게 만든다. 당시 미국 대다수의 국민들이었던 농민들은 빈곤에 시달리고 이제 새롭게 형성되어가는 노동자들도 다르지 않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마크 트웨인이 자신의 작품 그대로 명명했던 이른바 “금박을 입힌 시대(the Gilded Age)”가 펼쳐진 것이다. 겉으로는 화려한 부의 기회가 열리고 풍요해진 것 같지만 안으로 들여다보면 불평등이 극심해지고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의 저항이 격렬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빈부의 격차는 독점자본이 주도하는 사회와 1898년 이후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한 제국의 시대를 예비하고 있었다.

 

1865년 내전이 종식된 이후 1873년에서 1893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 대호황의 시기는 한편으로는 “강도귀족(robber barons)”이라고 불린 J .P. 모건, 앤드류 카네기, 존 록펠러, 코르넬리우스 밴더빌드, 다니엘 드류와 같은 막강한 대부호(大富豪) 가계를 탄생시켰다. 미국의 정치는 이들의 손에 장악되었고 부패와 비리는 일상이었고 그 결과, “돈으로 움직이는 금권정치(plutocracy”가 민주당, 공화당 양당체제를 지배했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대자본의, 대자본에 의한, 대자본을 위한 정치”가 확실해져 갔다. 철도건설을 주도한 자본은 농산물 유통을 쥐게 되면서 높은 수송비와 낮은 철도노동자의 임금을 통해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해갔으며, 토지독점도 아울러 추진하면서 거대한 미국의 대지를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농민과 노동자의 연대정치

 

이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 농민들과 노동자들은 서로 연대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877년의 철도파업은 연방정부의 잔혹한 탄압을 받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농민과 노동자들은 연방정부가 인민의 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게 된다. 이 시기 높은 농산물 수송비와 낮은 농산물 가격으로 은행대출을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된 농민들의 부채부담은 더욱 무거워지고, 저당잡힌 집과 땅이 그대로 금융자본에게 넘어가는 사태가 속출한다.

 

사정을 봐준다는 게 없는 즉각적이고 잔인한 처분이 이뤄졌다. 당시 은행은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은행이라기보다는 돈 못 갚으면 장기(臟器)라도 내놓으라는 식의 고리대금업이라고 할 “흡혈귀”였다.

 

프랑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 첫 장면에 등장하는 사건은 바로 이걸 보여준다. 미국의 중서부 캔자스에 살고 있던 도로시의 집이 돌풍이 불어 날아가는 장면은 이 지역의 회오리바람을 소재로 하였지만 농민들의 집이 실제로 은행에 “압류(foreclosure)”당하는 현실을 묘사한 셈이다. 그렇게 날아간 집이 동쪽 마녀를 덮쳐 죽게 한 사건의 의미는 동부 월가 금융자본에 대한 농민들의 적의를 상징해주고 있다.

 

이 시기에 또 하나의 주목할 바는 채무자에게 유리한 은본위제가 철폐되고 채권자 위주의 금본위제가 들어서면서 농민과 노동자들은 전국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조직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하는 사태였다. “빚”은 죽어야 해방되는 족쇄였고 독점자본이 쥐고 있는 정치를 “인민을 위한 정치”로 바꿀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철도자본을 규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연방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은 채 무한대의 자유를 누린 철도자본은 민주당, 공화당 모두에게 든든한 자금줄이었으니 농민과 노동자들이 원하는 입법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이러면서 대대적인 반독점 운동이 펼쳐졌으며 1884년에는 18개 주에서 “반독점당(Anti-monopoly Party)”까지 등장했다.

 

이보다 앞선 1874년, 인디애나주에서는 대대적인 개혁정치의 기조를 세우는 선언이 이루어진다. 그 문건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민의,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정치조직이 절실하다. 이 새로운 정치조직은 독점자본이 대중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고 부패가 없는 정부를 세울 개혁정치를 밀고 나갈 것이다.”

 

1880년대에 들어서면 이러한 정치운동이 농민과 노동자의 연대를 통해 빠르게 확대되어간다. 바로 이 시기에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이 나왔으며 20세기 사회주의의 미래를 꿈꾼 소설인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가 출간되었다. 또한 중서부 남과 북의 노동자 연대조직인 <노동기사(Knights of Labor)>가 등장한다.

 

여성들의 정치참여 또한 활발해지는데 이 운동의 최전선에는 프랑크 바움의 장모인 여성운동의 지도자 마틸다 조슬린 게이지(Matilda Joslyn Gage)가 있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이 도로시인 것도 장모의 영향을 받은 프랑크 바움이 여성의 정치적 지도력을 중심에 놓은 구성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허수아비는 농민, 깡통 아저씨는 노동자, 사자는 정치지도자를 대변한 것은 물론이었다. “오즈의 마법사”는 장막에 둘러쳐진 보이지 않는 정치의 정체를 암시했다. 이 시기 미국정치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것은 “대자본이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정부(the invisible government by big business)’”였다. “인민주의 운동(populist movement)”의 주체들은 이 “보이지 않는 정부”와 싸웠고 이 투쟁의 경험이 마침내 1887년 <인민당>을 만들어냈다.

 

<인민당>은 뜨거운 기세로 미국 정치를 개혁했는데 민주, 공화 양당은 이들의 도전에 독점체제에 대한 일정한 규제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 결실이 1890년에 나온 “반독점 법(the Anti-Trust Act)”이었다. 실제 효과는 기대만큼은 아니었으나 인민당의 반독점 운동이 발휘한 위력이었고 실업 노동자들을 위한 연방정부의 공공사업 요구는 이후 대공황시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서 실현된다.

 

인민당, 사회당, 진보당 그리고 위대한 “인민주의의 역사”

 

1896년 미국 대선에서 인민당은 민주당과 함께 서른여섯의 젊고 총명한 정치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을 앞세웠으나 실패했고 1904년과 1908년 독점자본을 공격하면서 농민을 대변한 진보 정치가 토마스 왓슨(Thomas E. Watson)을 대선후보로 내세웠다가 이 또한 승리하지 못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주의 정치지도자 유진 뎁스(Eugene Debs)가 이끄는 <사회당>에 인민주의자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미국 진보정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본질적 문제제기를 하면서 포퓰리즘은 이론화되고 보다 높은 수준으로 조직화되며 1930년대 미국 뉴딜정책의 기본내용을 이미 준비, 미국 정치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과정에서 1886년 노동절의 기원이 된 “헤이메이커 투쟁(Haymaker Riot)”, 1894년 대대적인 철도 파업 노동투쟁 “풀만 스트라이크(Pullman Strike)” 등은 인민주의 정치의 뼈대가 된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달리 있지 않았다. 풀만 스트라이크  당시 클리블란드 대통령은 군대를 파견, 노동자들을 유혈진압했고 유진 뎁스는 수감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인민들을 각성시키고 인민주의 정치전통을 보다 굳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1901년 맥킨리 대통령의 암살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디오도르 루스벨트는 “인민주의자들은 모두 벽 쪽에 일렬로 세워 총살을 해야 하는 혁명분자들”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포퓰리스트 세력을 적대시했다. 그는 대자본과 손잡고 미국의 제국주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인물이었다. 그런데 인민주의 정치세력은 사회당만이 아니라 “진보의 시대(the Progressive Era)”라고 역사가들이 이름붙인 시기(1896~1916)의 <진보당(the Progressive Party)>을 구성하는 주축이 된다.

 

이들 인민주의자들은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진보적 기록(<미국의 인민주의운동(The Populist Movement in the United States)>을 남긴 애나 로체스터(Anna Rochester)가 인용한 어귀처럼 “사회적으로 내쫓기고 직장에서 차별받고 개인적인 모욕과 때로 실체적으로 폭력을 당하기도 했으나” 반독점 개혁정치의 핵심적인 전통이 되어 미국 정치의 “진정한 민주주의(genuine democracy)”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포퓰리즘의 위대한 역사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이 뿌리에는 대자본의 독점체제가 군림하고 있다. 이걸 깨지 않으면 불평등은 구조적 해결을 근본적으로 찾을 수 없다. “재벌개혁”이라는 말이 어느새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라진 현실에서 자신을 “포퓰리스트”, “인민주의자”라고 담대하게 선언할 지도자, 어디 없을까?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사자는 그 임무를 맡게 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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