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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⑥ 폴 발레리와 세트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거대한 대기가 내 책을 폈다가 다시 접는다.

가루 같은 물결이 바위에서 솟아난다!

날아가거라 정말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희열하는 물로 부숴라.

삼각돛들이 모이를 쫓고 있는 이 지붕을.

 

계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거대한 바람, 치솟는 파도, 부서진 포말. 시원하고 거침없는 한나절의 해안가 파노라마다. 해변의 묘지(Le Cimetière marin). 20세기 최대의 상징주의 시인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대표작이다. 이 시를 발레리는 그의 고향 세트(Sète) 언덕에 있는 한 공동묘지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 스산한 공동묘지. 그 묵중함을 경쾌한 미로 승화시키는 이 마법. 거장 발레리가 아니면 누가 감히 이 기교를 부릴 수 있겠는가.

 

이 마법은 발레리의 고향 세트로부터 나왔다. 발레리의 정신적 동반자였던 세트. 그의 시의 원천이자 사고(思考)의 모태였다. “항구 근처의 비탈길과 골목길, 박물관, 고등학교, 방파제 근처의 원형교차로, 공동묘지, 등대.” 세트의 경치를 노래하기 위해 발레리가 자주 동원한 단어들이다. 자기 고향을 너무도 사랑했고 예찬했던 천재 시인. 그는 어느 날 예술가 친구 장 뒤피(Jean Dupuy)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세트 항구와 바다는 내 인생의 모든 무대였다.”

 

발레리는 이 인생의 무대인 로마(Rome) 거리에서 그의 스승이자 『목신의 오후』 저자인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를 매주 화요일 만났다. 그리고 이 둘은 정신적 교류를 죽을 때까지 이어갔다. 이처럼 시인들의 사랑을 받은 지중해의 작은 항구 도시 세트. 이곳의 자연경치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동쪽에는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서쪽에는 7500 헥타르나 되는 거대한 토(Thau) 호수가 에워싸고 있다. 바둑판 모양의 도시 중앙, 그리고 연못, 운하, 수로로 둘러싸인 모습들도 환상적이다. 이태리 베니스를 닮았다고 하여 “랑그독(Languedoc)의 베니스”라 불린다.

 

세트의 장관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고봉인 몽쌩 클레르(Mont St-Clair) 언덕 위로 쏟아지는 태양, 루이 13세 때 세워진 노트르담 드 라 살레트(Notre-Dame-de-la-Salette) 소성당 천정에 그려진 주황과 하늘색 톤의 그림들은 너무도 신비롭다. 조르주 브라쌍스를 기념하는 광장(Espace Georges Brassens)도 일색이다. 세트의 자랑이자 프랑스 탑 가수였던 브라쌍스를 기념하는 박물관은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여기에 정점을 찍는 폴 발레리 뮤지엄 (Musée Paul Valéry). 그리고 그곳의 희한한 나무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정원, 카페테리아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방파제와 지중해, 그리고 해변의 묘지. 환상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왜 발레리가 해변의 묘지를 그토록 아름답게 노래했고, 죽어서도 그곳에 묻혔는가. 이 모든 의문은 현장을 가봐야 바야흐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