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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나는 새해에도 문학의 길을 갈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절대자의 섭리에 순응해야겠지 싶다. 운명이란 두 글자가 품고 있는 그 의미 속으로 푹 빠져들어 허둥대다 끝나는 것이 인생인가 싶기도 하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내며 버스비를 아끼겠다고 온몸으로 걸었다. 기초적인 생활경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때때로 하늘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지족자선경(知足者仙境)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살았다. 매사에 족한 줄 알고 나와의 인연에 감사하며 상대를 배려하고자 했다. 따라서 창조적인 자신의 빛과 스타일을 위해 나 자신답게 살고자 했다. 그런데 진(眞)과 선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니라고 느껴졌을 때 영혼이 감전되어 죽어 가는가 싶기도 했다.

 

몇 년 전 이청준의 산문집에서 『부끄러움, 혹은 사랑의 이름으로』라는 글을 읽었다. 내용은 이렇다. 한국전쟁의 어느 해 겨울, 외국 선교사가 눈 덮인 시골길 다릿목을 지나가는데 교각 아래에서 웬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내려가 보니 한 남루한 여인이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죽어있는데 그의 품속에는 갓 태어난 여자아이가 아직 살아 울어대고 있었다. 심한 눈보라와 추위 속에서도 아이가 살아남은 것은 그 엄마가 자신의 옷을 벗어 아이를 꼭꼭 감싸 안고 죽었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는 사람을 불러 그 어미를 묻어주고 아이는 자신이 거둬다 길렀다. 세월은 흘러 아이가 어느덧 열 살쯤 되어 철이 들 무렵 선교사는 한국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되어 아이와 의논 끝에 함께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떠나기 전 선교사는 아이에게 그 어머니 무덤을 찾아가 하직 인사를 하도록 했다. 그날도 날씨는 쌀쌀하기 그지없었다. 아이 혼자 언덕 너머 제 어미 무덤으로 올려 보낸 선교사가 아래의 길가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아이는 돌아오는 기척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선교사가 언덕으로 올라가 보니 아이는 그 차가운 바람기 속에 자기 옷을 모두 벗어 엄마의 무덤을 꼭꼭 싸 덮어주고 자신은 발가벗은 몸으로 하염없이 서 있더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이것이 문학의 힘이요. 생명이 생명이게 하는 힘이며, 삶과 죽음의 의미가 내포된 문장이라고 느껴졌다. 그리하여 강의가 있을 때 자주 소개하며 한 편의 글이라도 이렇듯 울림과 깨달음이 있는 글이어야 생명력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집중해서 세상을 읽고 기도하며 글을 쓸 일이다. 물질의 가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충실할 것인가. 세상사 적당히 춤을 추듯 즐기다 말 것인가. 남보다 타고난 능력이 있거나 두뇌 기술자도 아니다. 그래서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코로나라는 역병이 세상에 장막을 친다하여도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고 볼 때 책 읽고 글 쓰며 소걸음으로 먼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리 아래의 어머니가 죽어가며 갓난아이를 추위 속에서 살려냈듯 자기 옷 벗어 엄마 무덤을 덮어준 10대 소녀의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런데 나는 근래 가족을 잃고 그의 무덤으로 가서 내 겉옷을 벗어 소녀를 흉내라도 내듯 그의 무덤을 덮어주었다. 세상 모든 게 허무의 늪이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 지금 이 순간같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문학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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