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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이성 밖 장미

 

 

"장미가 그곳에 피어 있기 전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 장미가 그곳에 피었을 때는, 아무도 장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 아,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 하지만 모든 일이 워낙 이렇지 않았던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것인가?' 마지막 연이다.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시는 "모든 일이 이렇지 않았던가?" 하고 비논리의 일상성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사회주의 체제였던 동독에서 1954년께 이런 시를 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인민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아야 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미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성으로는 알 수 없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 무엇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시인은 알고 있고, 보고 있다. 가능케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상상력일 터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불가지의 답답한 세상을 다른 세상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신화와 그 이후의 시와 소설 등 예술이 그런 매개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다.

 

다시 물어보자. 장미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발생하는 어떤 일 아닐까? 우리가 애써 쌓아 놓은 이성을 비웃으며 앞에서 손짓하고 있는 그 무엇 아닐까? 사례는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브레히트가 살았던, 평등의 나라라고 선전했던 동독이 한 순간에 붕괴한 것도 좋은 일례일 것이다. 장미는 이렇듯 울타리 안 이성의 세계가 아니라 울타리 밖 감각의 세계를 상징한다.

 

사례는 우리에게도 있을 것이다. 지난 2016년 겨울의 촛불은 그 누구의 계획에도 없던 일이다. 그런데 기존의 혁명 문법을 일거에 바꿔버렸다. 비조직과 비엘리티즘, 비폭력 등 이른바 '3비' 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이는 실로 "장미가 그곳에 피어 있기 전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와 같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금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던 게 흔들리고 있다. 광화문을 수놓았던 그 아름답던 촛불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촛불이라는 말 자체에 낡은 이미지가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러다 우리의 감각이 피운 장미를 스스로 부인하게 될 지도 모른다.

 

대선 시즌인데도 우리는 열망보다 절망을 안고 있다. 새로움을 찾기 힘든, 낡아도 너무 낡은 대선 후보들의 면면에서 장탄식을 한다. 선량한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행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살풍경은 내면화해 상처가 된다.

 

그러나 썩은 뿌리에서 움트는 새싹처럼 상처 속에서 얼굴 내밀고 있는 건 없을까? 이성이 아닌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그 무엇.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는 그 무엇. 진영주의 폐기, 직접민주주의 강화, 다양성에 기반한 다당제 등. 장미는 벌써 피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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