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 배달노동일기 1

 

 

“끼이익”

 

커브를 돌자 갑자기 뒷바퀴가 몸에서 떨어져나간 다리처럼 제멋대로 허우적거렸다. 차는 크게 S자를 그리면서 미끄러져 나갔다. 브레이크를 밟은 오른발에 ‘드드드득’ 하는 잔망스러운 느낌이 전해져 왔지만 차는 멈추질 않았다. 건너편 차들이 황급히 멈추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고 그 운전자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순간 스쳐갔다. 차는 중앙선을 크게 지나 겨우 멈춰 섰다. 등골이 오싹했다. 살살 차를 몰아 갓길에 세웠다. 엄동설한에 배달 일을 시작한지 불과 일주일 만에 생긴 일이다.

 

2022년을 코앞에 둔 지난 연말에 나는 큰 결심을 했다. 그렇게 계속 살 수는 없었다. 우선 생활비가 바닥났고, 빚은 늘어만 가고, 둘째는 고3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배달 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몸뚱이 하나만으로 돈벌이가 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1톤 트럭을 출퇴근용으로 제공한다는 사장의 말에 혹했다. 나는 운영하던 회사를 휴업하고 법인차를 처분하여 차가 없었다. 한편 마음이 시끄러울 때 몸 쓰는 일이 정신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2-3년을 돌이켜보니 나는 심신이 너무나 황량하게 지쳐있었고 생활은 건강하지 못했다. 그렇게 계속 살다가는 폐인이 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돈이 궁해서 벌어야 했다.

 

2022년 1월 2일부터 배달 일을 시작했다. 처음 간 회사는 자동차 공업사와 카센터에 부품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65만 킬로미터를 달린 1톤 트럭이 나에게 배정되었다. 그 또한 내 처지와 비슷했다. 유리창은 양쪽으로 금이 가서 차 유리 중앙을 향해 팔을 벌리고 있었다. 그 유리에 금 간 모습이 마치 천지창조의 한 장면같이 보였다. 차 바닥은 삭아 구멍이 뚫려서 찬바람이 그대로 밀려들었다. 차는 세차를 언제 했는지 번호판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의 허약해진 육신처럼 차는 오랜 시간 시동을 켜 놓아야만 겨우 따뜻해졌다.

 

현장일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첫 배달일은 한 달 만에 끝났다. 먼저 노동시간에 비해 월급이 너무 적었다. 세금 공제하고 손에 쥔 돈은 195만원. 아내는 그것도 어디냐고 말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만둔 이유가 있었다. 가장 하급 인생으로 취급받는 게 싫었다. 부품 배달하러 가면 자동차 공업사의 엔지니어들이 으레 반말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런저런 잔소리와 싫은 소리를 배달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퍼부었다.

 

나는 배달하는 사람인데,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런저런 질책과 욕설을 종일 들어야 했다. 물건을 여기다 두라 했는데 왜 저기다 두느냐? 물건을 왜 잘못 가져왔냐? 왜 물건이 비싸냐? 그 사람들 눈에도 배달일은 운전만 할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허드레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 치이고 크게 상처를 받은 내 처지에서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적인 모욕을 받는 것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젊은 시절 노동현장이전이라는 표현을 쓰던 한때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브나로드 운동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환갑을 앞둔 노동현장이전은 전혀 그런 것과 다르다. 일단 현장에서 살아남고 버티는 것이 최선의 목표가 되었다. 나의 2022년은 앞으로 닥칠 시련을 예고라도 하듯 그렇게 시작되었다. “커밍 순”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