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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제럴드 포드와 문재인


 

1.

1974년 9월, 미국 제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한 달 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 일요일 저녁 교회에서 돌아온 다음 (개인적 고민이 깊었다는 뜻이리라) 행한 조치였다. 논란이 분분했다. 하지만 사면을 단행한 포드를 향한 ‘인간적 비난’은 드물었다. 해석은 천차만별이었으나 정치적 맹우였던 닉슨에 대한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한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3월 15일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면을 요청하는 글을 이 칼럼에서 썼다. 법적, 정치적, 국민통합적 관점에 있어 당위성을 곡진히 말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문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케 하는 일은 있었다. 4월 25일 열린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내놓았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사면 등에 대해서는 국민 공감대가 판단기준”이며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하지만, 결코 대통령의 특권일 수는 없다”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정 교수에 대한 사면이 마치 부당한 특권행사일 수 있다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스로 손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그렇다면 세월호 아이들 250명을 수장시킨 부패시스템의 핵심이던 박근혜에 대한 사면은,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한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였다는 말인가?

 

5월 8일은 부처님 태어나심을 경축하는 사월초파일이다. 관례적으로 이날 정치적 특사가 많이 실행된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기 하루 전날이며, 따라서 실질적 사면 실행이 가능한 시점은 이 날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문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서 보인 유보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 번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면조치를 정면으로 요청한다.

 

2.

제럴드 포드는 닉슨 사면에 대하여 자신의 조치가 “정의의 행동은 아니지만 자비의 조치”라고 밝혔다. 이 결단을 통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갈기갈기 찢겨졌던 미국의 국론이 통합과 봉합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도 많다. 그런 거대 담론은 모두 접어두더라도, 나는 포드의 조치가 (스스로 심대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한) 한 인간으로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믿는다.

 

세계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미국 정치의 물줄기를 완전히 뒤바꾼 워터게이트 사건과 정경심 교수 사건의 의미를 수평비교할 일은 아니다. 권력 범죄와 그 은폐로 최종 탄핵 직전까지 갔던 닉슨에 대한 사면은, 정 교수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무게를 지녔기 때문이다.

 

포드는 2년 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나가야 할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되는 모든 개인적 손실을 무릅쓰고 사면의 길을 선택했다. 형식적 법 논리와 정치적 유 불리를 따진 계산의 결과가 아니었다. 자신과 행로를 같이 했던 동지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온전히 짊어지려 했던 것이다.

 

3.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했을까를 떠올려본다. 휘하와 더구나 그의 가족이 겪는 참담한 고통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짐을 졌을 거라고 생각된다. 김영삼이 그러지 않았을 것인가, 김대중이 그러지 않았을 것인가, 노무현이 과연 그러지 않았을 것인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책무조차 외면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배신에 가까운 것이다. 자신의 통치기간 동안 산출된 달콤한 열매만 향유하고 삼켜야 할 쓴 잔은 피하려 드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생의 신념으로 외치던 검찰개혁의 대의를 대신 수행하다가 멸문지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가족이다. 정경심 교수는 수감 중 뇌출혈 증세로 치료를 받고 있다. 딸 조민 씨는 부산대와 고려대의 입학취소 처분을 통해 청춘을 다 바쳐 걸어온 인생 전부를 절멸당할 처지에 있다. 참혹한 형극의 길이다.

 

요즈음 필자의 카카오톡에 문 대통령이 보낸 메시지들이 연속으로 쌓이고 있다. 지난 5년 동안의 치적을 다룬 것들이다. 3월 22일 “문재인 정부 5년 보고드립니다”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 5년의 기록”이란 동영상 3부작이 올라왔다. 4월 25일부터는 손석희 앵커와 나눈 “퇴임 전 마지막 인터뷰” 시리즈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업적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누군들 자신의 통치를 멋지게 마무리 짓고 아름다운 퇴장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직은 그래서는 안 된다. 조국 일가족의 비극을 외면한 채, 끝내 그 피 웅덩이를 밟고 이뤄낼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 마무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십자가를 대신 지다가 난도질당한 사람의 참극을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손에 피는커녕 먼지 하나 안 묻힌 채 혼자만 깨끗하고 고고한 퇴장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말 지도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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