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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윤석열 대통령, 배우 이정재에게 배우라

 

개봉 직전이라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으나 영화 ‘헌트’는 올여름 최고의 역작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평론 입장에서 올여름엔 딱 두 편의 영화만을 ‘건졌다’ 할 수 있는데 ‘헤어질 결심’과 ‘헌트’가 그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헤어질 결심’의 미국 영국 배급은 무비(mubi)가 ‘헌트’의 미국 내 배급 역시 유명 배급사가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헤어질 결심’은 확실하게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 영화상)과 영국 아카데미 상을 노린다는 것이고, '헌트' 역시 해외시장을 크게 넘보고 있다는 얘기다.

 

‘헌트’가 개봉되면 작품 자체 얘기도 얘기지만 아무래도 감독 이정재에 대한 얘기로 넘쳐날 것이다. 이미 영화의 공개 시사회 이후 이정재에 쏠리는 기자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 영화를 너무 잘 만들었는데 이게 진짜 이정재의 연출 솜씨냐는 것이고 이정재가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느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것은 진짜 이정재가 올곧이 자신만의 실력으로 이번 작품의 연출을 해낸 것이 분명하며 얘기를 해 본 결과 영화를 훌륭하게 만들어 낼 만큼 인문학적 지식과 영화적 소양이 혀를 내두를 수준이라는 것이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정재가 진화했다. 알고 보니 이정재는 준비된 감독이었다. 그 진가를 사람들이 진작에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물론 조력자는 있다. 이번 영화에서 공동 주연을 맡은 정우성이다. 이번 영화 ‘헌트’의 시나리오는 5년 전에 나온 것이며 당시 영화계에서는 모두들 고개를 설래설래 젓기만 했었다. 그런 시나리오를 가져다 각색하고 또 각색한 것이 이정재였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조언을 해주고 고쳐진 시나리오를 그때그때 모니터 해 준 것이 정우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영화사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런저런 뒷 배경을 알게 된 후 ‘헌트’를 곱씹어 보면 영화란 무릇 감독의 예술이되, 감독 외의 모든 스태프 – 프로듀서, 투자배급업자, 촬영, 조명, 녹음, 편집, 음악, 특수효과, 스턴트 등등 – 들의 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래서 프로덕션 과정이 매우 민주적일 때 최고 기량의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 역할의 수장은 바로 감독이다. 감독이 지도자이다. 이정재는 이번에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지도자의 준비된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실감하게 해 줬다. 지도자가 지향하는 게 무엇인지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예컨대 영화 ‘헌트’에서 단박에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오프닝 시퀀스 같은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장면을 찍기 전 이정재는 자신이 찍고자 하는 방향, 액션의 스케일, 촬영의 스타일 등등을 샅샅이 미리 연구하고 분석해 놓은 뒤 스태프 전원을 불러 브리핑하고, 함께 숙의하고, 같이 시뮬레이션을 짠 후에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스태프들은 그때에 보여 준 이정재의 ‘실력’을 인정하고 영화 내내 그와 호흡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 전원의 합, 그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 이 영화의 오프닝을 보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진짜 잘 찍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1983년의 독재자가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가 암살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고 그것을 막으려는 안전기획부 국내팀과 해외팀의 모습을 그린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그 독재자를 옹호하고 미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 암살 작전은 국내팀과 해외팀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군 가가 바로 정우성 혹은 이정재 둘 중의 하나이다. 영화는 줄곧 이 두 명 중 한 명을 추적하게 하고 나중에 그 정체를 알고 나서 관객들은 깜짝 놀라게 된다. 그 시나리오의 씨줄날줄이 이정재를 경이롭게 생각하게 만들 정도다. 이정재가 저런 생각을 했었단 말이지. 얼마나 평소에 영화와 책,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면 저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등등의 놀라움을 갖게 만든다.

 

영화에 『감독=지도자』가 있듯이 나라에는 『대통령=지도자』가 있다. 준비된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들 듯이 준비된 대통령이 나라를 온전히 이끈다. 성실한 감독이 영화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충일하게 만들 듯이 일에 열심인 대통령이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역사에 대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을 때 감독은 영화를 ‘정치적 올바름’을 가지고 만들 수 있고 역사적 시각을 올바로 가지려고 노력하는 대통령이 나라의 어두운 역사를 치유할 수가 있다. 우리는 현재 이런 얘기에 딱, 완전히 반대로 가는 대통령을 뽑은 상태다. 국민들이 마음이 불안한 이유다. 

 

미국 권력 서열 3위라는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한국에 왔을 때 대통령은 휴가라며 연극을 한편 본 후 배우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 좋다. 휴가일 수도 있고 연극 애호가라 연극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막걸리를 마시는 사진을 좋아라 할 것이라고 착각해 국민들에 공개하는 것은 정무 감각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아 안쓰럽다. 무엇보다 어떤 연극을 봤는지, 그 연극에 대한 감상평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이 없다. 그저 연극이 소외된 예술이고 가난한 예술업계인 만큼 거기서 ‘놀면’ 좋은 사람, 좋은 대통령 소리를 들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천만의 말씀이올시다이다.

 

준비된 감독의 영화를 보고 가슴이 뛰게 되는 것처럼 대통령이 준비된 행동으로, 다는 몰라도 아는 만큼만이라도 잘할 수 있는, 그걸 진솔하게 해 낼 수 있는, 정치 행위를 보고 싶다. 나라가 어지럽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오죽하면 조기 퇴진 시위까지 벌어지겠는가. 집권 3개월이 갓 된 대통령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태도로 영화를 만들면 백 점 만점에 24점이다. 영화학과에서는 퇴학당할 점수다. 별 다섯 개 기준으로 따지면 별 반 개를 받을 것이다. 극장에 붙이지도 못할 점수다. 제발 배우 이정재에게 배우시기를 바란다. 배우 이정재를 연구해 보시기 바란다. 주변에 문화 참모 하나 없으신가. 아 그렇지 문화관광부 장관이 정치부 기자 30년 경력이라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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