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문예동인지로 알려진 「창조」보다 열흘 앞선 1919년 1월 20일에 창간호를 낸 문예동인지 「신청년」(新靑年)이 발굴됐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한기형(국문학) 교수는 7일 한국서지학회(회장 신승운) 학술대회에서 현재까지 발굴된 이 잡지에 대한 자료적 가치를 다룬 논문을 발표한다.
소파 방정환이 창간을 주도한 「신청년」은 고서수집가이자 서지학자인 오영식 서울 보성고 국어교사에 의해 제3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이후 1.2호 복사본과 4.6호본이 개인장서문고인 아단문고에 소장돼 있음이 이곳 하영휘 학예실장에 의해 확인됐다. 5호는 목차만 확인 가능하다.
「신청년」은 그동안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회고록 등을 통해 이름만 전해지고 있었을 뿐이며 실물은 찾을 수 없었다.
한 교수는 이들 잡지에는 만해 한용운의 글을 비롯해 심훈.나도향.유광열.최승일.황석우.현진건 등의 소설.시.평론.번역 등 20여편이 실려 있다고 말했다.
실린 글 중에서 심훈의 '찬미가에 싸인 원혼'(1920년), 나도향의 '나의 과거(1)'(1921년), 박영희의 '애화'(1921년)는 기존에 알려진 이들 작가의 데뷔작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이다.
심훈은 이 작품에서 '심대섭'이란 이름으로 작품을 기고하고 있다.
한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근대문학사에서 「창조」를 절대화해왔으나 이번 「신청년」 발굴로 「창조」를 상대화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