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76쪽 / 1만 4000원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표제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 중에서)
김연수 작가가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2013) 이후 9년 만에 ‘이토록 평범한 미래’로 돌아왔다.
책은 작가가 최근 2~3년간 단편 작업에 집중적으로 매진한 끝에 선보이는 소설집으로, ‘시간’을 인식하는 김연수의 변화된 시각이 돋보인다.
작가는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흐르는 것으로만 여겨지는 시간을 여덟 편의 단편을 통해 다르게 정의한다. 독자가 현재의 시간, 즉 삶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표제작은 지구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예언으로 떠들썩했던 1999년 여름을 배경으로 한다. 동반자살을 결심한 스물한 살의 대학생 ‘나’와 ‘지민’이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 ‘재와 먼지’를 접한 뒤,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한 세계의 끝과 사랑의 시작이 어떻게 함께 놓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소설 속 소설인 ‘재와 먼지’에는 한 연인이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이 함께하는 시간의 끝, 사랑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동반자살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 죽음의 순간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눈앞에 펼쳐지며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과거에서 미래를 향하는 정방향이 아니라 역방향으로. 동반자살을 한 그날이 새로운 인생의 첫날이 되고, 자고 일어나면 그 전날이 되는 것이다.
그 소설에서 연인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한없이 기쁘고 설렜던,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두 번째 삶에서 그들은 그 만남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먼저 경험한다.
미래에 찾아올 과거를 상상하는 동안 두 사람은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깨닫게 되고, 그 끝에서 시간은 다시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원래대로 흐르기 시작한다.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 작품 모두에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이야기와 삶이 서로를 넘나들며 스며드는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독자는 왜 어떤 삶은 이야기를 접한 뒤 새롭게 시작되는지, 그리고 이야기를 사랑하면 왜 삶에 충실해지는지 알 수 있게 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