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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쉿! 젠틀맨이 누구게?

96. 젠틀맨 - 김경원

 

지난해 말 개봉해 1월 12일 현재 개봉 2주 만에 종영 위기를 맞고 있는 ‘젠틀맨’은 사실 매우 영리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흥분할 정도의 걸작은 아니지만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할 정도의 긴장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잠깐이라도 장면을 못 보게 되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칠까 봐 조바심을 내게 할 정도는 된다. 꽤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얘기이다.

 

이 영화가 흥행에서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제목 때문일 듯싶다. 젠틀맨이란 제목은 정작 이 영화를 도통 무슨 영화인지 짐작하지 못하게 한다. 영국 신사들의 정장 느낌이 나는 영화라는 얘긴지, 그렇다면 댄디(dandy)한 남자의 로맨스 아니면 폭력 남자나 나쁜 남자가 주인공이서 그것을 거꾸로 강조하기 위해 붙인 제목인지, 도대체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곧 ‘젠틀맨’이 케이퍼 무비(caper film, 등장인물들이 무리를 지어 절도를 하거나 강탈을 하는 이야기. 최동훈의 ‘도둑들’ 같은 영화)의 스토리 구조를 따라가는 작품임을 알게 된다. 일종의 사기단 얘기이고, 영국 가이 리치가 만든 동명 제목의 영화 ‘젠틀맨’이 롤 모델이라는 셈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사기꾼들이 정의감도 있고 사회적 목적의식도 있다는 얘기이다. 영화는 꽤 복잡한 배경을 갖고 있고 그걸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 노력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이 영화를 쓰고 만든 감독 김경원은 등장인물들, 특히 주인공 캐릭터를 꽤 많이 비틀어 놨다. 말 그대로 옷 잘 입고 잘 생겼으며 부드러운 성격의 젠틀맨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이건 영화광들만이 눈치챌 수 있을 텐데) 필름 누아르(film noir, 어둡고 잔인하며 폭력적인 뒷골목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를 일컫는 말. 1940년대 험프리보가트가 나왔던 ‘빅 슬립’이 대표적이다. 어두운 골목길, 비가 내리는 도시의 밤, 인물의 그림자가 즐겨 나온다)에 나오는 탐정 캐릭터로 그 느낌을 섞어 놓았다. 그래서 영화가 멋있(는 척 한)다. 영어로 말할 때 흔히들 스타일리시하다고 하는데 영화를 그렇게 디자인 해 놓았다.

 

주인공 현수(주지훈)의 캐릭터는 이런 류의 영화나 소설에서 최고봉이라 여겨지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탐정 캐릭터 필립 말로우에다 일본 인기만화 ‘시티 헌터’의 주인공 사에바 류를 섞어 놓은 것이다. 짐작컨대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경원 감독이 필립 말로우보다는 칼 프랭클린이란 할리우드 감독을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영화를 보며 그의 영화 ‘블루 데블(Devil in blue dress), 1995’을 많이 떠올렸다. 근데 이런 얘기란 게 다 쓸데없는 것이다. 일반 관객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으며, 관심 가질 필요도 없는 얘기이다. 그보다는 단순히 말해서 영화가 재미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영화에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할 수 있다. 대중 영화는 그 둘 다가 있거나 적어도 둘 중 하나만이라도 있으면 된다.

 

영화 ‘젠틀맨’은 의외로, 그러니까 예상 밖으로, 둘 다가 있는 작품이다. 오히려 영화가 뒤로 갈수록 후자 쪽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깜짝 놀라게 된다. 그건 순전히 박성웅이 맡은 전직 검사 권도훈 역 때문이고 그가 손발과 마음 모두를 받쳐 모시는(이용하는) 중앙 지검장 역(김귀선) 때문이다.

 

영화는 중반쯤 보는 사람들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데 (마치 영화 ‘헌트’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에서 강제로 지우게 했던 김학의 법무차관 사건을 소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트’가 아웅산 테러 사건을 수 십 년 만에 복기해 낸 것처럼)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매우 의미심장하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감독 김경원이 무수히 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학습하고 답습해 냈음을 보여 주듯, 영화는 이야기의 뛰어난 직조(織造) 능력을 과시한다. 장면 하나하나가 또 다른 장면 하나하나로 이어진다. 그 씨줄 날줄의 흐름이 매우 매끈하다.

 

주인공 현수는 모텔에서 장기 투숙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류 탐정이다. 탐정이랄 것도 없다. 흥신소 직원이자 대표이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맡아 처리하는 하류 인생이다. 비록 모텔에서 숙식하며 살지만 몸매와 외모가 미끈하고 여성을 ‘후리고’ 울리는 플레이 보이일 것처럼 보인다. 성격도 쾌활한 편이다. 직업상이어서인지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가 자주 가는 모텔 앞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먹으면서 말 못하는 주인 남자와 농지거리하는 걸 보면 그가 심성이 착한 사람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류의 탐정 영화, 필름 누아르 풍의 범죄 스릴러 영화는 앞자락에 깔리는 주변의 이야기,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하찮은 척하는 에피소드가 꽤 중요하다. 그걸 꼭 기억할 필요가 있는데, 뒤에 가서는 이것들이 반전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탐정 현우는 어느 날 포차에서 어묵을 우물우물 먹고 일을 나간다. 고등학생을 갓 지난 정도의 웬 여자 애가 헤어진 남자친구로부터 자신의 강아지를 찾아 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둘은 함께 경기도 변두리의 한 별장으로 가는데, 집 안으로 들어간 여자아이는 나올 생각을 않는다. 주변을 배회하던 주인공은 갑자기 습격을 받고 쓰러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됐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을 잡은 검사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다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신분이 뒤바뀐 채 의식을 되찾는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주인공은 진짜 검사가 일주일 후 의식이 돌아오기 전까지 사건을 해결하고 (여자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찾아내고) 자신의 누명을 벗기로 한다. 일명 검사 사칭 수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여기까지는 그렇고 그런 탐정 소동극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권도훈이란 전직 검사가 나오고 이 인간에게 여성들을 ‘공급하는’ 루트와 깡패들이 등장한다. 또 권도훈이 (섹스를 할) 여자들을 소개하는 대상이 중앙지검장이라는 아주 높은 직책의 파워맨이라는 것, 그 중앙지검장이 늘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참회를 하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 등 영화는 심상찮은 전개를 보이기 시작한다.

 

별장 안에서 어린 여성들에게 늘 흉측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권도훈은 (아마도) 주가 조작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 스위스 계좌에 이를 숨겨 놓은 채 호화로운 권력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바, 그 ‘뒷 배’가 바로 중앙지검장이라는 얘기이다.

 

지현수 일당, 지현수 수사 팀(이지만 사실은 뒷골목 ‘선수’들)은 점점 더 드러나는 엄청난 범죄의 윤곽에 바짝 긴장하게 된다. 근데 ‘이들’은 ‘저들’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이 모든 게 우연의 연속인 것일까. 여기에 깊고 큰 웅덩이, 음모의 배경은 없는 것일까. 영화는 대 반전의 이야기를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젠틀맨’은 이미 얘기한 바, 매우 영리한 영화인데 그건 이 작품이 현실 사회 정치를 비판하고 풍자하고 있는 내용이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정작 그런 얘기를 잘 숨기고 가서 그렇다는 얘기이다.

 

 

영화가 너무 현실에 붙어 있는 것을 대중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가 아닌 척 그런 얘기여야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부조리 극을 꾸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것들에 통달해야 한다. 사회 정치의식도 나름 정치(精緻) 해야 하며 많은 종류의 영화 작법들도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소품, 분장, 의상 등 트렌드에도 전문가적 식견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게 조화로워야 한다. 어색한 느낌, 남의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젠틀맨’은 오랜만에 나온 꽤 괜찮은 상업영화 수작이다. 김경원은 자신이 한국의 칼 프랭클린 같은 감독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행까지 하지 못한 이유는 딱 하나이다. 실제 김학의 사건이 지저분하게 결론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악이 늘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화를 제대로 알리고 홍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놓고 선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의 운명은 종종 현실의 무게감이 짓누르는 편이다. 아까운 영화 한 편을 잃은 셈이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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