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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빛에 약한 사람"

공예가 김정희씨의 양초사랑

'또로록, 똑똑…'. 도자기로 만든 주전자에서 찻잔을 향해 떨어지는 대춧잎 차 소리가 청명하다. 대추 잎을 직접 따와 반년이 넘는 기간동안 말려 보관했다는 집 주인의 정성이 겨울추위에도 푸르른 대춧잎 차의 모습과 닮아있다.
전형적인 겨울 날씨를 담고 있는 12월 초. 1번 국도를 내리 달려 광주 영인미술관을 지나 도착한 시골마을 초정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한적함이 묻어있는 곳이다. 초정리 초입에 위치한 작은 다리 하나를 지나니 30m 거리쯤에서 한 중년여성이 손짓을 해온다.
그가 바로 이 집 주인인 양초공예가 김정희(51)씨다. 차를 돌려 안내한 곳으로 들어가니 흙으로 만든 벽돌집이 수원서 온 기자를 맞는다. 집안에는 김씨가 만든 양초들이 사방으로 늘어 서 있고, 가운데 놓인 길다란 탁자 주위로 마실을 온 김씨의 오랜 지인들(이들도 모두 예술가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람들과의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그 사이로 놓인 탁자가 먼저 눈에 띤다. 김씨가 직접 만든 양초들이 모여 멋진 테이블 인테리어로 꾸며졌다. 양초 상자 하나하나에는 '금원'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비단길'이란 뜻을 담고 있다는 이 이름의 주인은 아까 건너온 '작은 다리'였다. 김씨가 매일 산책을 나가는 그 다리를 위해 직접 붙인 이름이란다.
그가 양초공예를 시작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가구 소품 조각을 주로 하던 김씨가 양초에 문양을 그려 넣어 주위 사람들에게 한 선물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김씨의 양초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전문적인 양초공예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양초공예를 그는 20년이 넘게 해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전문적인 양초공예가가 많지 않아 안타깝다. "우리나라에 처음 양초공예가 알려지기 시작할 땐 서양 공예를 그대로 뺏기는 식에 그쳤어요. 거기다 양초를 상품화해서 대량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작품으로서 양초공예는 찾기 힘든 형편이죠."오랫동안 양초공예를 해 온 김씨는 사실상 양초공예가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작업이 되도록 해 온 당사자다. 지난해 여성회관 경기여성작가 초대전에서 그가 내놓았던 2m30cm의 대형초는 보는 이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만큼 웅장했다. 양초 안에 문을 만들어 그 안에 또 다른 초를 밝힘으로써 경기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작가들의 미래를 밝게 비췄다.
김씨가 만든 작품 중에는 양초의 길이가 1cm인 것부터 3m에 이르는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양초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올 때면 직접 현장을 찾아가 그곳의 분위기를 살피고 거기에 어울리는 작품을 제작한다.
양초를 만들어 그 공간에 불을 켜주고 돌아서면 기뻐하는 사람들 속에서 눈물이 나곤 한다는 김씨. 그 이유를 묻자 "자신은 '불빛에 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김씨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여유있는 집안에서 자란 김씨는 어린시절 동네에 있던 무당굿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화려한 빛깔의 무당집 문 앞에는 제 몸을 태우며 화려한 빛깔을 밝히고 있는 양초가 어린 김정희의 혼을 빨아들일 듯 했다. 어느날은 자신도 모르게 그 초를 훔쳐온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제 소형 위주의 양초공예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잖아요. 어느날 내 작품을 돌아보니 자꾸 작품 크기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것이 내 안에 들어차 있는 어떤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제는 자연친화적이면서도 누구나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정수영 기자 jsy@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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