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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고성] 서울의 봄과 칠레의 봄

 

정치학을 강의하는 선생으로 2023년 가장 기쁜 소식은 영화 ‘서울의 봄’의 성공이다. 수업에서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것보다 한 편의 영화 효과가 엄청났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학생들도 열광하고 질문이 쏟아졌다. 고마운 일이다.

 

서울의 봄과 비슷한 일이 남미의 칠레에서도 발생했다. 1970년 칠레는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를 선택함으로 세계 최초의 혁명이 아닌 선거로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켰다. 아옌데는 만성적인 칠레의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주력 산업인 구리 광산과 은행을 국유화했고 부자들의 토지 소유를 규제했다. 공공재산 확보, 남녀동일임금제, 전국민 기초생활임금제, 어린이 무상급식 등으로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해 나가자 미국과 다국적 기업은 방치하지 않았다. 미국은 보유하고 있던 구리를 세계시장에 대량 방출함으로써 국제 구리가격을 폭락시켰고 노조에 잠입한 프락치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유도했다. 특히 안데스산맥을 끼고 있어서 철도보다 트럭 운송이 주류였던 칠레에서 트럭기사노조의 파업은 치명타였다.

 

드디어 1973년 박정희를 존경했던 참모총장 피노체트는 미국의 지원으로 쿠데타로 대통령 궁을 공격했다. 경호원들에게 아옌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떠나라. 저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그러나 총은 두고 가라. 나는 군인의 본분을 망각한 저들에게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최후 지시를 들은 경호원은 단 한 명도 떠나지 않고 궁 안에서 반란군과 맞서다 모두 산화했다. 모두가 12.12 당시 정병주 특전 사령관을 지키다 사망한 김오랑 소령이었다.

 

아옌데를 사살하고 집권한 피노체트 치하에서 사망, 실종자가 3천 명 이상이고 수만 명이 구금되었다. 1990년 권좌에서 퇴진했지만, 피노체트의 과거청산은 없었다. 2019년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인상으로 촉발된 피노체트 헌법의 개헌이 시도되었다. 특히 K-팝을 사랑하는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개헌을 공약으로 걸고 세계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진보적인 개헌안을 냈지만, 아직 국민적 공감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 뒤이어 살아남은 피노체트의 후예들은 극우적 개헌안을 제출했지만 지난 연말(12.17) 역시 부결되었다. 칠레를 신자유주의의 실험실이 아닌 무덤으로 만들겠다던 보리치의 봄은 결국 동력상실되고 말았다.

 

칠레의 사례는 분열된 사회에서 국민적 합의로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는 민주주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증명한다. 다른 나라 못지않게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극심한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12.12 이후 하나회 중심의 나라가 올바로 청산되었는가? 아직도 하나회의 망령이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검사들의 나라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기시감이 든다. 다행인 것은 서울의 봄을 통해 올바른 과거사를 익히고 있는 청년들이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에 2024년 희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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