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지난해 7조 1000억 원이 넘는 부실채권을 상각하거나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한 수치로, 경기침체와 고금리 여파로 가계와 기업의 대출 상환 부담이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지난해 상·매각한 부실채권은 총 7조 1019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5조 4544억 원)보다 30.2% 많으며, 2022년(2조 3013억 원)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의 3중고가 장기화하면서 기업의 경영 여건이 악화됐고, 가계의 상환 부담도 늘어 연체율이 급격히 증가했다”며 “코로나19 당시 연장된 대출 만기와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면서 그동안 숨겨졌던 부실도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상각(장부에서 제거)하거나 매각(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저가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대규모 상·매각으로 인해 지난해 말 기준 5대 은행의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다소 하락했다.
5대 은행의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지난해 12월 말 0.35%로, 전월(0.42%)보다 0.07%포인트(p) 하락했다. 같은 기간 NPL 비율도 0.38%에서 0.31%로 0.07%p 내렸다.
다만 전년 동월과 비교해보면 연체율(0.29%→0.35%)과 NPL 비율(0.26%→0.31%) 평균 모두 상승세다.
새로운 부실 채권 추이가 드러나는 신규 연체율(해당월 신규 연체 발생액/전월 말 대출잔액)은 11월 0.10%에서 12월 0.09%로 0.01%p 떨어지는 데 그쳤다.
전반적으로 은행권 연체율은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떨어졌다가, 다시 약 5년 전 수준까지 높아진 상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2021년 말 0.21%로 내려갔다가 점차 상승해 지난해 11월 말 0.52%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1월(0.48%)과 비슷한 수준이다.
금융권은 당분간 연체율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고 있어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장기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환율 상승, 글로벌 경기 불안, 내수 회복 지연 등 부정적인 요소가 겹쳐 있어 연체율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 강화와 리스크 대응 체계 점검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