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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당신이 다시 엄마의 손맛을 느끼고 싶다면

논나 - 스티븐 크보스

 

‘논나’와 같은 뻔한 드라마를, 뻔한 줄 알면서도, 뻔하게 보게 되는 이유는 어쨌든 새출발의 꿈을 가진 사람들, 그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래서 신의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실종된 단어 혹은 상실된 어휘인 희망과 우정, 화해, 그리고 가족의 화합, 이웃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논나’는 우리가 뭘 잃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코미디의 어법으로, 신파의 논리로 가르쳐 준다. 꽤나 가슴을 적신다.

 

제목 ‘논나’의 논나는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란 뜻이다. 이 영화를 보면 논나는 결국 한 집안에서 내려오는 특유의 음식을 만드는 할머니란 의미이고 이른바 ‘엄마손(맛)’ 할머니들을 말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개성 만두집, 보쌈 김치집, 통배김치 한정식집 등의 원조 할머니(엄마)를 생각하면 된다. 영화 ‘논나’는 결국 음식 영화이고, 할머니들의 여성영화이며, 가족영화인 데다, 궁극의 휴먼 드라마이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CJ ENM 컴패니가 투자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주인공 조 스카라벨라(빈스 본)는 뉴욕에서 살아가는 엔지니어 노동자이다. 그는 어머니가 죽고 나서 뉴욕 이탈리아계 논나 들을 셰프로 데려와 스태이튼 아일랜드에서 ‘에노테카 마리아’란 이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열 계획을 세운다. 맨하탄이 아니고 스테이튼 아일랜드라는 게 중요한데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서울 시내 광화문이나 경복궁 혹은 강남의 어디가 아니라 강화도나 영종도에다 식당을 내는 꼴이다. 요리 전문가나 음식 평론가들이 관심을 가질 동네는 아니라는 얘기이다. 에노테카 마리아는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어머니는 조에게 보험금 유산으로 20만 달러를 남긴다. 식당을 연다는 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세계 그 어디에서나 표준율을 공유하는 나라에서라면 각종 규제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방법도 있고 식품위생법도 있으며 각종의 법을 준수하고 자격 요건을 얻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대출 모기지 이자를 내야 하며 매력적인 공간으로 보일 만큼 인테리어를 해야 하는 등 투자할 대목이 많다. 식당을 한다는 건 속된 말로 앞으로 남고 뒤로 손해를 보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주인공 조는 그 엄청난 장애를 타고 넘어가 어머니의 레시피, 할머니 논나의 레시피를 세상에 내놓으려는 막무가내 모험을 시도한다. 조의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류의 드라마는 실패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조가 성공하기까지 무수하게 좌초의 위기를 겪어 가는 에피소드를 이어 나가며 사람들을 쫄깃쫄깃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며 안달하게 한다는 얘기이다. 그 과정에서 조는 불알친구 브루노(조 맹갈리에노)와 크게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며 스테이튼 아일랜드 동네사람들의 텃세에 시달리기도 한다. 주인공 조가 새로 열겠다는 식당 ‘에노테카 마리아’ 자리는 원래 ‘도미니크 스피리토’란 또 다른 이민자가 50년 넘게 식당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라 스태이튼 아일랜드 사람들은 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텃세’ 때문에 조의 식당은 조기에 폐업 위기를 겪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논나’가 불굴의 의지 ’따위’를 그려 나가는 드라마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일상으로부터 얻는 작은 생활의 지혜를 통해 비교적 ‘통 큰’ 성찰을 이어 나가게 하는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생활의 지혜 급에 해당하는 이탈리안 격언들이 많이 나온다. ‘밥상에서는 늙지 않는다’라든가 ‘슬플 땐 배를 채워야 한다’같은 말이 나온다. ‘음식은 사랑’이며 ‘나이는 병이 아니고’ ‘비밀이니까 특별한 것인데’ ‘위대한 것은 늘 세월을 이기는 법’이다 같은 말이 줄줄 이어진다. 그런 대사들, 그와 같은 에피소드들을 보고 있으면 슬쩍 미소가 지어지게 된다. 영화 ‘논나’가 추구하는 것은 폭소가 아니라 잔 웃음이다. 영화 ‘논나’는 ‘미소의 교환’ 같은 작품이다.

 

논나 셰프들 역으로 네 명의 노년 배우들이 필요했다. 미용실을 하던 지아 역으로 수잔 서랜든이 나오고 실버타운에서 좌충우돌 살아가던 로베르타 역으로는 로레인 브라코가, 나중에 주인공 조의 연인이 되는 올리비아(린다 카델리니)와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할머니 안토넬라 역으로는 브랜다 바카로가 나온다. 수녀 출신의 논나, 테레사 역으로는 탈리아 샤이어가 캐스팅돼 있다. 모두가 다 전설의 명배우들이다. 수잔 서랜든의 영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명작들이 많고 로레인 브라코는 마틴 스콜세이지의 ‘좋은 친구들’에서 돈과 마약에 찌들어 가는 갱단의 여자로 나왔었으며 탈리아 샤이어는 '록키'와 '대부' 시리즈의 그 여인이다. 브랜다 바카로를 잘 모를 수 있지만 잘만 킹의 그 유명한 에로 영화 ‘레드 슈 다이어리’의 배우였다. 모두들 대단한 배우들이고 나이들이 로레인 브라코를 제외하고 다 80대 들이다. 브랜다 바카로는 86세, 탈리아 샤이어와 수잔 서랜든 공히 79, 로레인 브라코는 71세이다. 영화 ‘논나’는 이처럼 한편으로는 여성 고령화 사회를 겨냥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아무래도 시장성이 크지 않은 관계로 극장용으로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작품이다. 넷플릭스의 유용성이 다시 한번 드러난 작품인 셈이다.

 

 

네 할머니들의 티격태격 싸움도 잔잔한 재미를 준다. 안토넬라는 시칠리 출신이고 로베르타는 볼로냐 출신인데 이 두 지역은 우리의 영남과 호남만큼 적대적이다. 지아는 할머니치고 가슴 볼륨이 커서 안토넬라, 특히 로베르타는 그녀를 천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나중에 지아의 가슴이 할머니치고 풍만한 이유가 유방암 제거 수술 탓이라는 걸 알게 된다. 테레사가 수녀원을 나온 것은 그 안에서 젊은 수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음도 알려진다. 네 할머니들이 화해를 이루어 나가는 모습도 이 영화를 보는 잔잔한 재미 중의 하나이다.

 

이탈리안 음식 이름은 통 알 수가 없다. 카푸젤레가 어떤 음식인지, 주인공 조가 그토록 만들려고 했던 그레이비가 무엇인지, 닭고기 테트라치니, 크랩 케이크, 시금치와 치즈 캐서롤이 대체 어떤 맛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굳이 알아낼 필요가 없다. 음식은 지식이 아니다. 음식은 사랑일 뿐이다. 영화 ‘논나’를 보고 있으면 어머니가 나를 위해 해주시던, 맛을 보라며 떠먹여 주시던 음식이 기억이 난다. 영화 ‘논나’는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영화 ‘논나’는 또 그래서, 이상하게 눈물을 훔치게 만든다. 어릴 때 우리가 울면 엄마는 늘 그랬다. 엄마는 먹을 것을 해줬다. 울면서 먹으면 체해, 울지 말고 어여 먹어, 라고 하셨다. 엄마의 손맛과 그 손맛을 지닌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바로 ‘논나’이다. 영화는 때론 소품으로 진심을 나타낸다. 작은 영화가 좋은 건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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