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로 수평사회와 수직사회가 존재해왔다. 중국에서 수평사회라면 전설적인 요·순·우임금 때이고 한국에서는 대체적으로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과 조선의 세종재위 기간을 꼽는다.
요·순·우 시대에는 임금이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태평성대였다. 때문에 유가에서는 이들을 성군(聖君)으로 꼽고 왕도정치의 전형으로 본다. 요·순·우는 농민들과 같이 농사도 짓고 사냥꾼과 어울렸다. 한국에서는 조선조 세종재위시절을 최고의 태평성대로 친다. 임금이 학자들과 함께 학문을 논하고 과학기술의 진흥을 꾀했던 시기이다.
이 같은 시대의 사회가 수평사회다. 임금이 군림하지 않고 대중 속에 묻혔던 것이다. 수평사회양태의 통치시대에는 문화가 꽃을 피운다. 반면에 수직사회는 힘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양태이다. 대표적인 임금으로는 진나라의 시왕과 조선의 연산군을 꼽는다. 이들 두임금 모두 카리스마로 국민들의 숨소리조차 통제했던 것이다.
수직사회에 대해 맹자의 설명이 돋보인다. 제(齊)나라의 선(宣)왕은 문왕(文王:주나라를 연 무왕의 아버지로서 덕이 뛰어 났다)의 동산(전용사냥터)은 사방 70리가 넘었는데도 백성들이 아무런 비난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동산은 사방 40리밖에 안되는데 말이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이에 맹자는 문왕이 동산을 가지고 있지만 주민들과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말이 없던 것이라고 했다. 문왕은 주민들이 동산에 자유롭게 들어가 나무도 하고 사냥도 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소위 주민들과 수평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제선왕은 동산에 출입금지 공고를 내걸고 사슴을 잡았을 때에는 사람을 죽인 것과 같은 벌을 준다고 했다. 맹자는 사슴의 목숨이 사람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꼬집고 수직사회의 폐해를 지적했다. 기원전에도 수평사회 곧 민주사회를 으뜸으로 쳤던 것이다.
滿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