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宙合樓)의 정문(正門)인 어수문(魚水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문(門)의 이름은 본 건물의 명칭을 따서 사용하는데, 어수문은 주합루와 다른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기록이 없어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동궐도’를 보면 주합루 뒤편에 ‘어수당(魚水堂)’이라고 쓴 건물이 보이는데, 같은 이름의 어수당과 어수문이 서로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수당은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어수당은 불로문(不老門)안에 있는데 효종 시기에 창건되었다.”라고 되어 있어 정조가 만든 주합루보다 이전에 건축된 것을 알 수 있다. 또 ‘궁궐지’에서는 효종, 숙종, 정조, 순조가 어수당을 주제로 한 시(詩)가 실려 있으며 숙종의 시(詩)에는 어수당을 화당(華堂)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며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같은 이름의 건물과 문(門)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를 이끌고 있다. 만약 두 건물이 하나의 구성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둘 중 하나는 본 위치가 아닐 수 있다. 가정이 맞
경기도내에 진출한 유통 대기업들은 무수하다. 본사는 서울에 두고 있으면서 이들이 벌어가는 돈은 천문학적 숫자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유통 대기업들은 상생약속을 외면한 채 지방자치단체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포시 지역의 예를 보더라도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현대프리미엄 홈플러스 이마트 등 4개 대형마트 가운데 올해 지역을 위해 기부한 금액은 ‘0’라고 한다. 고촌 현대프리미엄도 지난 2년 전 허가진행 당시 2년 간 1억원씩을 불우이웃에 기부했을 뿐 올해는 전혀 없다. 이마트 홈플러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김포시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이들 대형 마트 4곳에서 엄청난 수익을 얻으면서도 공익사업에 기여한 것은 수익 대비 0.01~0.03% 수준이라고 한다. 지역 제품 구매율도 5%대 미만이다. 유통 대기업이 지역에 진출할 당시에는 다양한 상생프로그램을 제시했지만 지역 기여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지역경제 발전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대기업들의 얄팍한 상술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통 대기업들이 지역주민들로부터 막대한 수익을
‘부자들은 감세혜택을 주고 서민들의 유리지갑은 톡톡 털어간다’는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하다. 여기다가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는 담배와 소주 등의 가격도 대폭 인상하면서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그럼에도 이 착한 국민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세금 징수에 큰 저항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금정책에 불만은 있지만 세금이 있어야 국가가 운영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업이 망했다던가하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세금을 못내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세금을 당연시한다. 그런데 문제는 재산이 많아 여유롭게 살면서도 의무를 이행치 않는 악덕체납자들이다. 실제로 체납자 본인 명의로는 아무런 재산이 없으면서 가족 명의로 적지 않은 재산을 빼돌려 풍요롭게 생활하는 악덕 체납자들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따라서 악덕체납자들이 교묘한 방법으로 세금을 피해가는 만큼 해당 관청도 다양한 체납처분 기법을 동원해 체납액을 끝까지 징수하고 있다. 수원시의 경우 해마다 늘어나는 체납액에 대응, 지난 해 2월 전국 최초로 이월 체납액 징수를 전담하는 체납세징수단을 설치하기도 했다. 수원시 체납세징수단은 고액·고질 체납자는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징수한다는 방침으로
젖은 청솔가지 내게 온 시집 /김승기 자 깨어 듣는 차가운 바람소리 밤새 무겁기만 한 구들장 매운 연기에 눈물콧물 흘려도 비명처럼 탁탁, 잘 타지는 않고 차라리 죽고 싶어, 원장 나 죽는 약 좀 줘! 가랑가랑 목에 걸려 뱉어내지도 못하는 외딴집 하루 - ‘시집-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 2015·현대시학 김승기 시인은 정신과 의사이다. 영주에서 병원을 열고 영주 근동의 정신을 돌보고 있다. 그 청정지역에도 돌보아야 할 정신이 있다는 것이 작금의 현실일 것이다. 청솔가지는 마르지 않는 소나무 가지다. 그것을 처음에 땔 땐 불이 잘 붙지 않으나 일단 붙었다 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불꽃을 피워낸다. 삶도 처음엔 청솔가지에 불붙이기와 흡사 할 것이다. 청솔가지가 피워 올리는 연기를 참아내야 구들장이 쩔쩔 끓어오르는 겨울아방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겨울을 견디고 건넌다는 것은 삶의 여정이다. 여정 위에서 삶의 고개를 모로 꺾고 고꾸라진다는 것은 생의 패배다. 죽겠다고 자주 말하는 사람은 역으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경우가 대다수다. 외딴집의 쓸쓸함을 이겨내면서 또 기다리는 것이 봄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늘 주위를 살펴서 시를 선보이
뉴욕의 빈민가 월세 방에 사는 제임스와 델라는 부부다. 그들은 서로에게 줄 크리스마스선물을 미리 준비 못 했다. 돈이 없어서였다. 해서 당일에서야 서로 모르게 선물을 준비했다. 부인은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 팔아 남편에게 줄 시곗줄을 샀다. 평소에 줄 없는 회중시계를 갖고 다녀서였다. 남편은 아끼던 시계 팔아 버리고 대신 부인이 브로드웨이 진열장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사고 싶어 했던 머리빗을 샀다. 부부는 그날 밤 선물을 교환한 뒤 둘만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행복해 했다. 미국 작가 오 헨리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의 줄거리다. 진정한 선물이란,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팔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언제부터 크리스마스 때 선물이 오갔는지 잘 알 수 없다. 다만 1800년대 미국 남부 흑인들 사이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말이 메리 크리스마스와 같은 의미로 쓰였던 것으로 보아 역사는 오래지 않은 것 같다. 당시 남부 흑인들은 크리스마스 아침에 누군가를 만나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먼저 외치면 상대방은 고마워하며 선물을 내놓아야 했다는 것인데 사탕이나 호두 정도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전날 밤
고대 그리스의 화가였던 제욱시스와 파라우시스의 대결은 잘 알려진 일화이다. 두 사람은 누가 더 진짜처럼 그리느냐를 두고 겨루었는데, 제욱시스는 포도나무를 그렸다. 그림이 어찌나 진짜 같던지 새가 그림을 향해 달려들었고, 제욱시스는 의기양양해 파라우시스에게 커튼을 열어 그의 그림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러자 파라우시스는 그 커튼이 실제 커튼이 아니라 그의 그림이라고 말한다. 제욱시스와 파라우시스의 대결은 한 때 미술사에서 작품이 실제와 얼마나 똑같은지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매겨졌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대상을 알아볼 수 없는 기괴한 형태가 넘쳐나고, 심지어 그 어떤 형태도 아예 드러나지 않는 회화가 판치는 오늘날, 이들의 대결은 무색하게만 느껴진다. 서구의 미술사를 단 몇 마디로 분절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들은 캔버스에서 ‘형태’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혹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화두 중 하나를 꼽아보면, 캔버스에 형태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해악하다고 여겼던 비평가들과 예술가들의 주장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비평가와 예술가를 필두로 1940년대 말부터 형성된 미국의 현대 예술경향
“따르르릉, 따르르릉!” “뭐라꼬? 서울로 올라오싯다꼬?” 앞이 캄캄한 진주엄마는 옆집으로 냅다 뛴다. 정봉이 어머니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빌려오고, 묵직한 쌀자루도 빌려오고, 몇 번을 들락거리며 무엇인가를 빌려다 전시한 후에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친정엄마를 맞았다. 가난한 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며 가슴 밑에서부터 뜨거운 무엇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요즘 화재가 되고 있는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나 또한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풋풋하고 훈훈한 이웃들의 정감을 느끼게 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자취를 했어야 했다. 변변히 할 줄 아는 음식도 없고 겨우 밥이나 끓여먹는 정도였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마치 자기 자식 대하듯 살갑게 챙겨주시며 한 식구처럼 대해주신 주인집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랬다. 어린나이에 고향을 떠나 일명 유학을 한답시고 도시로 진학한 아이들. 그 숱한 자취생들을 이웃들이 피붙이처럼 챙기고 키워주신 것이다. 잘못을 하면 거침없이 혼을 내기도 하시면서 말이다. 물론 아이들도 이웃 어른들의 그 가르침을 거부하지 않고 마치 부모님 말씀인 듯